2010년 5월 로베스트와 롯데그룹 계열사 사이의 롯데물산 지분 거래에 920억원가량의 웃돈이 끼었다는 의혹을 풀 열쇠는 정확한 주식 가치다. 롯데그룹 계열사들은 롯데물산 주식의 가치를 공개할 때마다 한결같이 “외부 평가기관의 판단을 받았다”고 했지만, 유독 신격호(94) 총괄회장의 스위스 페이퍼컴퍼니 로베스트로부터 사들일 때는 가격을 높게 쳐줬다.
2010년 5월 20일 호텔롯데, 롯데쇼핑, 롯데미도파, 롯데역사는 이사회를 소집하고 로베스트가 소유한 롯데물산 지분을 각자 1.1∼2.5% 취득하기로 했다. 이사회에서 결의된 취득 단가 3만8982원은 “외부 기관의 평가를 받은 것”으로 명시됐다. 취득 단가를 포함한 논의 과정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통해 일반에 공개됐다.
그러나 정작 롯데물산 1주의 가격은 이 거래를 전후해 2만원을 넘어선 적이 없다. 다른 기업이 아니라 롯데그룹 계열사들이 스스로 금융 당국에 신고한 롯데물산 지분의 자산 가치가 그랬다. 현재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롯데제과의 경우 2010년에 분기마다 롯데물산의 주식 가치를 금융 당국에 보고했다. 이 기간 롯데물산 주식 1만2894주를 소유한 롯데제과는 자산을 ‘시장성 없는 지분증권’으로 분류하며 총 장부금액을 2억1400만원(1·2·3분기 말)∼2억2200만원(4분기 말)이라고 밝혔다.
결국 비상장 주식인 롯데물산 1주의 가격은 로베스트와 롯데그룹 계열사의 거래일에 1만6481.82원이었던 셈이다. 롯데그룹 계열사 4곳이 롯데물산 1주를 3만8982원으로 승인하고, 그에 따라 스위스로 거액을 보낸 지 불과 30여일 뒤인 2010년 6월 30일에도 롯데물산의 주식 가치는 1만6481.82원을 유지했다. 2010년 12월 31일에 주가가 1만7097.97원으로 올랐지만 소폭 변동했을 뿐이었다.
롯데제과가 신고한 장부금액을 적정 가격으로 간주하면 로베스트로 빠져나간 웃돈은 정확히 919억3234만4996원이다. 롯데제과뿐 아니라 검찰 압수수색을 받은 롯데칠성음료 등 다른 계열사들도 2010년에 보유 중인 롯데물산의 주식 가치를 주당 1만6000원∼1만7000원이라고 신고했다. 이들은 “독립적인 외부 평가기관의 전문가적 판단에 근거한 합리적인 평가모형과 적절한 추정치를 사용해 산정한 금액”이라고 투자자에게 알렸다.
신 총괄회장은 이런 로베스트를 통해 국내에 거금을 반입하려다 금융 당국의 레이더에 포착되기도 했다. 금감원은 2014년 신 총괄회장이 로베스트로부터 ‘증여성 자금’ 900만 달러를 송금받은 사실을 파악해 위법성을 조사했다. 당시 롯데그룹은 “롯데물산 주식의 일부를 매각하면서 발생한 세금을 납부하기 위해 들여온 돈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었다. 하지만 현재 “로베스트의 자금 내역에 대해서는 일본롯데만이 안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롯데그룹의 돈이 잠실 제2롯데월드 빌딩투자를 가장해 조세회피처인 스위스에 설립된 신 총괄회장의 해외 법인으로 흘러갔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계열사 4곳에서 일제히 주식 취득과 관련한 이사회가 열린 데 대해서는 그룹 정책본부 차원의 지시가 있었는지 의심하고 있다. 문제성 있는 거래가 발생한 시점은 횡령·배임죄의 공소시효(7년) 내에 있다. 당시 정책본부장은 신동빈(61) 회장이었다.
이경원 노용택 양민철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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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물산 주식 살 때는 1株에 3만8982원… 36일 뒤엔 1만6481원
입력 2016-06-16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