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채식주의자’ 번역한 영국인 데버러 스미스 “소설의 강렬한 이미지·시적 문장이 인상적”

입력 2016-06-15 20:38

“2013년부터 ‘채식주의자’를 번역했어요. 6년 전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해 3년 만에 겁 없이 번역에 나선 셈이지요. 한 해 전엔 배수아씨 작품도 번역했죠. 하지만 한국어 말고 다른 언어는 모르니 언어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작가 한강의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를 번역해 올해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공동 수상자로 선정된 영국인 데버러 스미스(28·사진). 15일 제22회 서울국제도서전 행사장인 서울 강남구 코엑스 기자간담회에 등장한 그는 회색 카디건을 걸친 수수한 옷차림이었다.

지난달 17일 수상 이후 처음 한국을 찾은 그는 시종 겸손했다. 그러나 노벨문학상 등 한국인 특유의 인정 욕구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각을 보였다.

스미스는 짧은 기간 번역으로 세계적인 상을 거머쥔 비결에 대해 “그 작품이 너무 좋았다. 번역하고 싶은 목표, 그리고 동기 부여가 있어서 가능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번역은 겸손한 작업이다. 자기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다”면서 “오히려 혼자 책을 읽을 때 행복하다”고 말했다. 또 “상은 주관적인 것이니 상을 받았다는 이유로 한국문학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자신을 낮췄다. 맨부커상 수상 이후 일상이 달라졌는지 묻자 “한국에서는 이름이 알려져 있지만 영국에서는 전혀 유명하지 않다. 수상 직후에 이메일이 오는 등 며칠 시끌벅적하더니 금세 조용해졌다”며 작게 웃었다.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은 기존에는 작가에게 주어졌으나 올해부터 번역 작품을 대상으로 하면서 작가와 번역자에게 공동으로 상을 준다. 그는 “번역이 창조적 행위로 인정받은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먼저 길을 열며 번역 작업을 해온 선배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번역 철학도 밝혔다. “번역가는 어느 부분에 충실하기 위해 다른 부분에 불충할 수밖에 없어요. 이는 부주의함이 아니라 더 충실하기 위해 스스로 불충을 허용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부실한 번역은 작품을 훼손할 수 있지만 어떤 세계 최고 수준의 번역도 보잘것없는 작품을 명작처럼 포장할 수 없어요.”

그는 ‘채식주의자’의 매력을 누차 강조하면서 “강렬한 이미지, 시적 문장을 주목했고 그것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것이 기쁘다”고 했다. 또 영국에는 연작소설의 형식이 없어 신선할 거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계기로 더 많은 사람들이 한강 작가의 작품과 더불어 한국소설에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인이 갖는 노벨문학상에 대한 갈증과 콤플렉스에 대해서는 일침을 놓았다.

“작가가 좋은 작품 쓰고 독자가 잘 즐기면 그게 충분한 보상이지 않을까요.”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