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눈치에… 아세안 ‘남중국해 성명’ 철회

입력 2016-06-16 04:00
왕이 중국 외교부장(오른쪽 여섯 번째)이 14일 윈난성 위시에서 열린 중국-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외교장관 특별회의에서 참가자들과 함께 손을 맞잡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신화뉴시스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이 중국에서 열린 특별장관회의에서 발표한 남중국해 분쟁 관련 성명을 긴급히 철회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예정된 공동기자회견도 취소됐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갈등하는 아세안 국가들의 현주소다.

중국과 아세안 회원국 외교장관들은 14일 중국 윈난성 위시에서 특별회의를 가졌다. 특별회의는 3년 만으로 네덜란드 헤이그 소재 상설중재재판소(PCA)의 남중국해 중재판결이 중국에 불리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전망 속에 이뤄졌다. 중국이 아세안 국가들을 회유하려는 목적이 강했다.

아세안 국가들은 당초 “남중국해에서 신뢰와 확신을 무너뜨리고 긴장을 고조시키는 최근의 상황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15일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말레이시아의 제안으로 성명은 철회됐다. 이유는 설명되지 않았지만 중국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별회의가 끝난 직후 예정된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비비안 발라크리슈난 싱가포르 외교장관의 합동 기자회견도 3시간이나 연기된 끝에 왕 부장 혼자 참석했다. 싱가포르는 특별회의 중재국으로 아세안 10개국을 대표하고 있다. 중국은 싱가포르 외교장관이 항공편 때문에 기자회견에 불참했다고 해명했지만 상가포르 측은 입을 다물고 있다.

중국 언론들은 중국과 아세안 간에 의견 불일치를 인정하면서도 서방이 ‘중국 고립’으로 몰아간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환구망은 “특별회의에서 아세안 외교장관들은 코뮈니케(공동성명)는 물론 공식문서를 발표하지 않았다”면서 “남중국해 문제의 공통 인식은 없었지만 일부 서방 언론은 아세안 국가들이 중국에 불만을 나타냈다는 정보만 골라 보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국과 미국은 PCA 중재 판결을 앞두고 치열한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왕이 외교부장은 지난 4월 캄보디아, 브루나이, 라오스를 잇달아 방문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3일 노로돔 시하모니 캄보디아 국왕을 베이징으로 초청했다. 지난 3월에는 메콩강 유역 5개국의 총리·부총리를 하이난성으로 초청해 제1차 ‘란창강-메콩강 정상회담’을 열었다.

아세안 국가들은 중국과 미국으로부터 선택을 강요받는다. ‘철회된 성명’에서도 아세안 국가들은 “국제법의 원칙에 따라 남중국해에서의 항행의 안전과 자유, 평화가 유지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중국을 겨냥하는가 하면 “법률과 외교적 절차를 거쳐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중국을 옹호하기도 했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

[월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