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도 생물처럼 끊임없이 진화한다. 특히 약팀은 강팀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기 위해 진화의 속도를 높인다. 그 결과 약팀들의 ‘맞춤형 전술’이 속속 등장했다. 때로 약팀은 강팀의 약한 고리를 공략하는 전술로 기적을 만들기도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한국의 2002 한·일 월드컵 4강 진출이다. ‘히딩크호’는 경기 내내 상대가 볼을 잡기 전에 위치를 선점하고, 상대가 볼을 소유하면 2∼3명이 순간적으로 압박해 볼을 빼앗는 전술로 파란을 일으켰다. 2016 프랑스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16)에서도 약팀들은 기발한 전술로 강팀들을 괴롭히며 파란을 예고하고 있다.
유로 2016에서 흥미로운 맞춤형 전술을 들고 나온 팀은 아이슬란드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34위인 아이슬란드는 유로 2016 지역 예선에서 ‘얼음 돌풍’을 일으켰다. 탄탄한 수비로 6경기를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조 2위에 올라 처음으로 메이저대회 본선에 진출한 것이다. 아이슬란드에서 개인 능력으로 골을 터뜨릴 수 있는 자원은 사실상 질피 시구르드손(27·스완지시티)이 유일하다. 이런 아이슬란드가 본선 첫 경기에서 강호 포르투갈을 상대로 승점 1점을 챙겼다.
아이슬란드는 15일(한국시간) 프랑스 생테티엔에서 열린 대회 조별리그 F조 1차전에서 FIFA 랭킹 8위의 강호 포르투갈과 1대 1로 비겼다.
포르투갈은 경기 내내 아이슬란드를 압도했다. 볼 점유율에서 66대 34로 크게 앞섰고, 슈팅에서도 25대 4로 절대적인 우위를 점했다. 수치에서 알 수 있듯이 포르투갈은 거의 일방적인 공격을 퍼부었지만 아이슬란드의 두터운 수비를 뚫지 못했다. 아이슬란드는 공격과 수비의 간격을 좁힌 채 경기했다. 포르투갈 선수들이 넘어오면 필드 플레이어 10명이 모두 내려와 수비에 매달렸다.
아이슬란드의 거친 몸싸움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이슬란드 선수들은 개인기가 좋은 포르투갈 선수들을 거칠게 다뤘다. 공중 볼 다툼에서도 상대가 편하게 볼을 잡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이 경기의 키포인트는 ‘호날두 동결’이었다. 포르투갈이 자랑하는 ‘득점기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이전에 접해 보지 못한 수비에 막혀 당황했다. 아이슬란드는 전통적인 맨투맨 마크에서 탈피해 농구처럼 ‘지역방어’와 ‘개인방어’를 섞어 쓰는 수비로 호날두를 얼려 버렸다.
하이미르 할그림손 감독은 경기 후 “호날두 같은 선수는 한 사람이 막기 어렵다. 공간을 없애기 위해선 팀 전체가 움직여야 했다. 호날두 방어 임무를 모든 선수가 나눠 가졌다”고 설명했다.
호날두는 개인 통산 127번째 A매치에 나서 포르투갈의 전설인 루이스 피구(은퇴)와 어깨를 나란히 했지만, 체면을 완전히 구겼다. 그는 경기 후 “아이슬란드 골문 앞에 버스가 서 있는 느낌이었다”며 “우리는 이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아이슬란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한 팀이 공격시도를 하지 않으면 상대하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했다. 이어 “포르투갈은 축구를 했고, 이기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는 단지 방어를 통한 역습만 노렸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나 아이슬란드는 수비만 한 게 아니다. 전반 31분 루이스 나니에게 선제골을 허용하자 후반 들어 공격과 수비 라인을 올려 역습을 노렸다. 후반 5분 비르키르 비아르나손은 포르투갈 문전에서 요한 구드문드손의 크로스를 오른발 발리슛으로 연결해 동점골을 터뜨렸다.
대회 3연패를 노리는 FIFA 6위의 강호 스페인도 30위 체코의 수비 축구에 혼쭐이 났다. 스페인은 지난 13일 대회 조별리그 D조 1차전에서 후반 42분 터진 제라르드 피케의 결승골에 힘입어 체코에 1대 0으로 신승했다. 체코는 스페인에 맞춰 전술을 짰다. 점유율은 포기하고 상대에게 볼 소유권을 허락한 채 경기를 운영했다. 대신 스페인이 자신들의 위험지역으로 볼을 투입하는 것을 막았다. 스페인은 볼 점유율에서 67대 33으로 앞섰지만 체코가 쌓은 블록 안에서 볼을 돌렸기 때문에 결정적인 찬스를 만들지 못했다. 유효슈팅에서 5대 3으로 앞섰을 뿐이었다. 체코도 마냥 수비만 한 것은 아니었다. 약간의 운만 따라 준다면 통할 수도 있는 역습으로 스페인의 골문을 두드렸다.
약팀이 강팀을 상대로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전술은 예전부터 있었다. 최근엔 이 전술이 맞춤형으로 발전하고 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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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6-16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