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 10주기를 맞아 서울 종로구 창신동 집터에 조성 중인 백남준기념관이 11월 개관한다. 서울시로부터 백남준기념관 운영을 위탁 받은 서울시립미술관은 이에 앞서 추모전을 마련했다.
백남준기념관이 서는 ‘창신동 197번지’는 백남준이 5세이던 1937년부터 고교를 졸업하고 유학 가던 1949년까지 12년을 살았던 곳이다. 음식점으로 사용되던 단층 한옥(연면적 93.9㎡)을 최욱 건축가가 리모델링했다.
서울에서 포목상을 하는 거부의 아들로 태어난 백남준은 사업을 하라던 부친의 뜻을 거스르고 예술가의 길을 걸었다. 기념관은 작품보다는, 놀이와 독서, 교육 등 성장기 궤적을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춘다. 인터렉티브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생애와 예술세계를 보여주는 ‘버츄얼 뮤지엄’, 40년대 창신동 시절의 문화지리적 경험 등을 소개하는 ‘디오라마’(배경 위에 모형을 설치해 하나의 장면을 만드는 것) 등을 갖춘다. 7월 20일 생일에는 이곳에서 기념행사도 연다.
서울시립미술관이 기념관 개관에 앞서 서소문 본관에서 갖는 추모전은 7월 31일까지 열리는 ‘백남준∞플럭서스’전이다. 지난해 말부터 연초까지 세종문화회관, 현대화랑, 백남준아트센터 등에서 전시가 이어진 끝에 선보이는 ‘꼴찌 전시’인 셈. 차별화를 위해 비디오아트의 모태가 된 플럭서스 운동에 초점을 맞춘 듯하다.
변화, 유동을 뜻하는 플럭서스는 미국인 조지 마키우나스(1931∼1978)가 1962년 독일에서 조직한 이래 1970년대 뉴욕 파리 런던 스톡홀름 프라하 등 유럽과 미국, 일본 등지로 퍼져나간 국제적인 전위예술 운동이다. 부르주아를 위한 예술을 거부하고, 일상의 예술을 부르짖으며 음악과 미술, 무대예술과 문학 등 여러 장르를 융합한 예술개념을 주창했다. 존 케이지, 요셉 보이스, 오노 요코 등 거장들이 영감을 주고받던 동지였다. 동양에서 온 혈기 넘친 백남준은 바이올린을 부수고, 입에 붓을 물어 글씨를 쓰고, 넥타이를 자르는 해프닝을 벌였다. 플럭서스 정신이 있었기에 백남준은 훗날 비디오아트라는 혁신적인 예술에 도전할 수 있었다. 플럭서스는 장르의 벽을 허무는 개념미술, 포스트모더니즘의 근원이 된 곳이기도 하다.
전시는 플럭서스가 내건 예술의 대중화 기치를 보여주기 위해 전시물의 벽을 낮추는 등 하드웨어적 노력의 흔적은 보인다. 그러나 사진, 포스터, 드로잉, 지도 등이 어떤 구체적인 설명도 없이 나열돼 있을 뿐이다. 예술의 대중화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플럭서스 초기 멤버인 덴마크 출신 에릭 앤더슨(75)이 백남준을 위해 헌정한 ‘크라잉 스페이스’ 코너는 신선하다. 80년대부터 작가가 선보였던 이 작품은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이번 전시에 백남준에 대한 헌정작으로 나왔다. 온통 연두색인 공간에 의자와 테이블 모양의 설치물 있고, 두개의 대리석에는 호박씨 크기의 원 두 개가 눈물자국처럼 있다. 14일 개막식에 참석한 앤더슨은 “눈물은 견고한 대리석도 뚫을 수 있다는 고대 그리스의 경구에서 착안한 작품”이라며 “감정이야말로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전시장의 강풍과 네온사인, 강렬한 원색이 주는 물리적인 자극 때문에 눈물이 찔끔 나며 눈물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다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축제 같은 우리의 장례문화 같은 추모 공간이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감정은 의사소통 수단, 눈물이 대리석 뚫는다”… 서울시립미술관 ‘백남준∞플럭서스’ 展
입력 2016-06-15 1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