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롯데그룹 계열사들로부터 한꺼번에 1592억여원의 자금을 조달한 로베스트는 신격호(94) 총괄회장 소유 스위스 특수목적법인(SPC)이다. 설립 30년이 넘은 이 회사는 실질적으로는 페이퍼컴퍼니에 가깝고, 결국은 일본 회사다. 14일 롯데그룹 관계자는 로베스트에 대해 “일본롯데홀딩스의 자회사다. 펀드 형태의 특수목적법인으로, 서류상 존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자금 저수지 역할 했나
롯데그룹 계열사들이 실제 가치보다 높은 가격에 로베스트의 롯데물산 주식을 대거 사들인 사례는 롯데쇼핑 외에도 그룹 지주사 역할을 하는 호텔롯데, 롯데미도파, 롯데역사 등 4건이나 된다. 롯데그룹 계열사의 감사보고서에 근거해 추산되는 웃돈은 900억원 안팎 규모다. 이 때문에 로베스트가 롯데그룹 수뇌부에게 향하는 비자금의 ‘저수지’ 역할을 하지 않았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자금흐름 추적이 어려운 해외 페이퍼컴퍼니들은 그간 많은 재벌기업들의 비자금 형성 통로였다.
비상장 주식의 내부거래를 통해 스위스로 롯데의 회삿돈이 대거 흘러간 시점을 두고도 다양한 관측이 나온다. 롯데물산은 잠실 제2롯데월드의 설립·운영 회사다. 제2롯데월드에 대한 허가·착공은 군 당국과의 갈등, 정권 로비 의혹 등 무수한 우여곡절 끝에 이뤄졌다. 로베스트의 롯데물산 주식 처분은 착공 1년여 만에 진행됐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2010년 주식 매도를 통해 많은 현금이 생긴 것은 맞다”면서도 “다만 로베스트의 자금거래 내역은 한국롯데는 전혀 모르고 일본롯데가 안다”고 말했다.
로베스트의 흔적들
롯데 계열사들은 그동안 최대한 로베스트의 존재를 숨겨 왔다. 로베스트는 이번 검찰 압수수색 대상이 되기도 한 롯데정보통신의 보통주 89만3320주(10.45%)를 소유한 대주주였지만, 지난 2월 5일 이전까지 투자자들은 그 이름을 알지 못했다. 롯데정보통신이 로베스트의 이름과 지분을 ‘계열회사’란에 명시하지 않고 ‘기타’란에 뭉뚱그렸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신격호 총괄회장이 로베스트의 실질 소유주”라고 결론을 내리면서 지난 2월 5일에야 최대주주에 로베스트가 존재한다는 변동 공시가 이뤄졌다. 이날 로베스트의 롯데정보통신 지분은 전량 신 총괄회장이 가진 것으로 수정 공시됐다. 스위스에 근거지를 두고 이처럼 베일에 싸인 로베스트에 대해 실체 파악이 어려울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로베스트가 롯데그룹과 별다른 거래가 없던 건설사인 대림산업에 크게 투자한 사실이 공개되기도 했다. 대림산업은 2012년 3월 주주총회에서 영업보고서를 제시해 로베스트가 대림산업 보통주 121만여주(3.5%)를 소유한 대주주임을 밝혔다. 금융 당국과 주주를 대상으로 한 대림산업의 보고서에서 로베스트는 ‘외국인투자자’로 설명됐다.
그에 앞선 2010년 5월 20일에는 롯데미도파의 이사회 회의록에 이름이 등장했다. 로베스트가 보유한 롯데물산 주식 152만560주를 취득할 것인지 결정하는 회의였다. 주당 3만8982원의 가격으로 롯데물산 지분 2.5%를 장외에서 사들이는 거래였다. 이때 주식 매도인은 ‘LOVEST LTD. (스위스법인)’으로 적혀 있다.
당시 롯데미도파 이사회는 주식 취득 목적을 경영 효율성 제고 차원이라고 밝혔다. 거래되는 롯데물산이 잠실 제2롯데월드 설립·운영 회사라는 점이 높이 평가됐고, 향후 판매시설 사업을 확대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투영됐다. 같은 날 이사회를 연 롯데쇼핑, 롯데역사, 호텔롯데 역시 마찬가지 결론을 내렸다.
이날 롯데미도파 이사회 의장이 의안에 대한 승인 여부를 묻자 참석 이사와 감사 전원은 이의 없이 승인했다. 당시 매입에 찬성한 것으로 기록이 남은 이사 가운데에는 지난 10일 검찰의 롯데그룹 계열사 1차 압수수색 과정에서 임의동행한 이도 있었다.이경원 노용택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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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로베스트, 롯데 비자금 ‘거대 저수지’ 가능성
입력 2016-06-15 04:00 수정 2016-06-15 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