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국내외 3847개 홈피 해킹… 잡고 보니 고교생

입력 2016-06-14 18:18 수정 2016-06-14 18:31
학업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교우관계도 원만했다. 겉보기에는 남다를 것 없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A군(16)은 지난 1년간 ‘이중생활’을 즐겼다. 교복을 벗고 숙제를 끝내면 해커로 돌변했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해킹한 뒤 첫 화면에 ‘Website got hacked(이 사이트는 해킹됐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해킹한 사이트 주소를 자신의 SNS 계정에 올리며 실력을 과시했다.

A군은 독학으로 해킹 기법을 익혔다. 해킹에 필요한 프로그램은 ‘구글링’을 통해 인터넷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주로 보안이 취약한 서버에 기반을 둔 중소형 홈페이지를 노렸다. 4가지 프로그래밍 언어를 구사하는 A군이 홈페이지 한 곳을 해킹하는 데는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지난해 11월에는 하루에만 홈페이지 343곳을 해킹하기도 했다.

A군은 홈페이지 화면을 변조하는 ‘디페이스(Deface)’ 기법을 활용해 지난해 4월부터 1년 동안 국내외 홈페이지 3847곳을 해킹했다. 미국, 중국, 베트남, 이탈리아 등 87개국 홈페이지가 해킹을 당했다. 국내에서는 기업과 쇼핑몰 등 홈페이지 141곳이 피해를 입었다.

국제 해킹그룹 ‘어나니머스(Anonymous)’는 A군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A군은 어나니머스의 지령에 따라 홈페이지를 해킹한 뒤 어나니머스를 상징하는 ‘가이 포크스 가면’ 이미지로 첫 화면을 바꿨다. 홍콩 민주화를 지지하기 위한 어나니머스의 ‘홍콩작전’에 참여해 중국과 일본의 홈페이지를 해킹하기도 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과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해킹하고 화면을 변조한 혐의(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고등학교 2학년 A군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14일 밝혔다.

A군은 경찰 조사에서 “어나니머스가 멋있어 보였다”면서 “해킹이 죄가 되는 줄 몰랐다”고 진술했다. 화면을 변조했을 뿐 개인정보 유출 등은 저지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A군 가족들은 A군이 해킹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신훈 기자 zorb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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