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정진영] 정치인 골프와 멀리건

입력 2016-06-14 19:48

대체로 정치인은 골프를 좋아한다. ‘대통령과 골프’(인물과 사상사)의 저자 안문석은 책에서 정치인과 골프가 친한 이유를 사람 만나기 좋고, 대화하기 편하며,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롭기 때문이라고 했다. 누구에겐들 골프의 이런 효용이 반갑지 않겠나만 골치 아픈 일이 많은 정치인에게 특히 매력적인 것으로 본 것 같다. 골프광인 오바마는 골프를 ‘4시간의 자유’라고 했다.

우리 정치인과 골프에 얽힌 일화는 수두룩하다. 주로 악연의 잔혹사다. 국무총리, 국회의장, 국회의원 등 골프를 치다 경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때와 장소, 동반자를 가리지 않았던 무절제함이 화를 자초했다. 골프가 정치사의 변곡점이 된 적도 있다. 1990년 3당 합당의 단초는 89년 10월 김영삼과 김종필의 골프회동이었다고 한다. JP는 훗날 “DJP연합은 악성 훅이 났지만 3당 합당은 잘했던 것 같아. 티샷도 페어웨이에 잘 떨어졌고, 세컨드 샷도 훌륭했지”라고 말했다.

지난 주말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여야 3당 원내 지도부를 초청해 골프를 즐겼다. 언론은 모임의 초점을 ‘협치’에 두고 기사화했다. 팩트(fact)의 근거는 멀리건이었다. 이들은 거의 18홀 내내 멀리건을 주고받으며 골프를 쳤다. 멀리건은 홀에서 첫 샷을 실수했을 때 벌타 없이 다시 치도록 허용하는 골프용어다. 동반자의 명백한 실수를 무효로 하고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는 의미에서 라운딩 중 베풀 수 있는 최대의 호의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으면 불가한 멀리건을 계속 나눴다는 점에서 언론이 20대 국회에서의 정치 복원을 기대한 것인지도 모른다.

화끈하게 ‘멀리건’을 외치는 건 좋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다. 매홀 멀리건은 노림수가 있는 접대 골프를 연상케 한다. 진정성이 떨어져 보인다. 여의도 정치에 필요한 것은 건성으로 주는 멀리건이 아니다. 발전적 긴장관계를 유지하되 에티켓과 룰을 지키며 플레이하는 것이다.

정진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