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계족산성, 말캉말캉 맨발 감촉, 하늘길 녹색 샤워

입력 2016-06-15 17:37
대전 계족산성을 찾은 관광객이 돌로 쌓은 성곽 끝에 서서 장대하게 펼쳐진 풍광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등산복 차림의 여성들이 맨발로 계족산 황톳길을 걷고 있다. 황톳길 맨발 체험은 발을 자극해 숙면에 도움을 준다.
장태산자연휴양림의 메타세쿼이아가 하늘을 찌를 듯 우람하다. 나무 숲 사이에 조성된 데크를 걸으면 눈높이에서 화려한 녹색을 볼 수 있다.
계족산 황톳길 가든의 흑만두 전골
“늙은 관절은 흙길과 시멘트길을 민감하게 구별한다. 똑같은 십리길이라도 시멘트길과 흙길은 걷고 난 느낌이 완연히 다르다. 긴장하지도 방심하지도 않고 나무처럼 꼿꼿하게 땅과 직각을 이루며 흙길을 걸으면서 흙이 뿜어 올린 온갖 아름다운 것들(중략)을 맡는 기쁨을 무엇에 비할까.”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중산층의 삶을 그려냈던 소설가 박완서의 산문집 ‘호미’ 중 ‘흙길 예찬’에 나오는 글이다. 숲이 푸르름을 더해 가는 요즘 숲속에 드는 것만으로도 상쾌한 기분이 든다. 나아가 푸르게 우거진 수목들 사이에서 맨발로 황톳길을 걸으면 황토와 숲이 내뿜는 건강한 기운을 온몸에 받을 수 있다. 과거의 아련한 추억이나 그리움을 느끼게 해주는 힐링 공간이 대도시에 자리하고 있다.

계족산(鷄足山)은 대전 동구와 대덕구의 동북부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큰 산이다. 높이 429m로, 산줄기가 닭발처럼 퍼져 나갔다해 이름을 얻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숲속 맨발걷기’라는 독특한 테마를 갖고 탄생한 계족산 황톳길은 대전 대덕구 장동 삼림욕장부터 임도를 따라 총 14.5㎞ 구간에 조성돼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맨발 체험이 가능하다. 부드러운 황토가 발바닥을 포근하게 감싸주기 때문에 발 마사지는 물론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서 삼림욕까지 한꺼번에 누릴 수 있는 매력을 지녔다.

삼림욕장에 들어서면 마치 더위에 살짝 익은 듯한 불그스레한 황톳길이 이어진다. 임도(林道) 중 가장자리 일부에 황토를 깔아 맨발로 걷는 길을 만들었다. 딱딱한 흙이 아니라 차진 흙 길이다. 신발을 벗고 한 발 내딛는 순간 그동안 잊고 있었던 흙의 감촉이 내 발을 자극한다. 발바닥에 부드러운 간지럼이 퍼진다. 조금 묽은 황토는 발가락 사이로 삐죽 빠져 오른다. 발가락도 간지럽다는 듯이 저절로 꼼지락거린다. 말랑말랑한 황토의 감촉도 좋다. 삭막한 도시생활에 지친 이들에게 힐링 그 자체다.

나무 사이로 나부끼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어느새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식히려 잠시 멈춰서면 어린 아이와 손을 잡고 나란히 걷는 가족의 모습이 시야를 사로잡는다. 어린 아이는 마치 놀이동산에 온 것처럼 함박웃음을 지으며 즐거워한다.

2006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계족산 황톳길은 ‘우연’에서 시작됐다. 대전 지역 한 업체 회장이 평소 즐겨 찾던 계족산에서 지인들과 함께 걷던 중 불편한 하이힐을 신은 여성에게 자신의 운동화를 벗어주고 양말만 신은 채 자갈길을 걷게 됐다. 맨발로 한참을 걷자 발이 아프고 힘들었다. 하지만 그날 저녁 하체가 따뜻해지고 머리가 맑아져 오랜만에 숙면을 경험했다고 한다. 이후 더 많은 사람과 맨발 걷기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전국의 질 좋은 황토를 구입, 계족산에 황톳길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황톳길은 단순히 황토를 깔기만 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날씨 상황에 맞춰 수시로 보강 작업이 필요하다. 황토가 딱딱해지면 뒤집고 물을 뿌려 말랑말랑한 상태로 만들고, 비가 많이 오면 질퍽거리지 않도록 황톳길을 비닐로 덮는 노력이 뒤따랐다. 그 덕분에 2013년, 2015년 2회 연속 문화체육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관광 100선’에 올랐다.

황톳길을 따라 올라가면 계족산 정상에 다다른다. 서북으로 대전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반대편으로는 대청댐 호수를 멀리 조망할 수 있다. 정상에는 사적 제355호인 계족산성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산성은 테뫼형(산 정상을 둘러쌓은 성)으로 성벽 안쪽 높이 3.4m, 외벽 높이 7m, 상부 너비 3.7m의 규모를 갖추고 있다. 금강 하류의 중요한 지점에 있고, 백제시대 토기 조각이 많이 출토되고 있어 백제의 옹산성(甕山城)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헌에 백제부흥군과 신라의 김유신·품일 등이 싸웠다는 기록이 있다.

대전 서구 장안길에 위치한 장태산자연휴양림을 찾으면 ‘수직 본능’이 되살아난다. 키가 족히 30m는 됨직한 우람한 메타세쿼이아가 하늘을 찌를 듯 서있다. 이 숲은 임창봉씨의 노력에서 비롯됐다. 1973년 사재 200억원을 들여 조성하기 시작해 1991년 국내 최초 민간휴양림으로 지정받았다. 2002년 대전시가 매입해 운영 중이다. 휴양림 입구에서 제일 먼저 만날 수 있는 것이 바로 임씨의 흉상이다.

장태산자연휴양림의 ‘메타세쿼이아 숲’은 요즘 신록의 웅장함을 전한다. 특히 ‘숲속의 집’ 인근에서 메타세쿼이아의 훌쩍 자란 키가 유난히 돋보인다. 키 재기를 하듯 열을 지어 서 있는 모습이 호위병처럼 늠름하다.

이곳에서 놓쳐서는 안 될 두 가지가 있다면 ‘숲속어드벤처’와 ‘스카이웨이’다. 관리사무소 옆에 있는 ‘숲속어드벤처’길로 들어가면 나무데크를 따라 ‘스카이타워’까지 갈 수 있다. ‘스카이웨이’는 메타세쿼이아 나무 숲 사이에 만들어 놓은 높이 10∼16m, 폭 1.8m, 길이 196m 철골 구조로 된 하늘길이다. 그 길에 오르면 늘씬하게 뻗은 메타세쿼이아의 허리춤을 지나가게 된다. 눈높이에서 화려한 녹색을 내뿜는 나뭇잎들에 손을 스치면 그대로 색이 묻어날 것 같다. ‘녹색 샤워’나 다름없다. 나무 둥치는 우람함을 그대로 내보인다.

스카이웨이의 끝에는 안이 텅 빈 육각형의 대형 철골 구조물이 반긴다. 길을 따라 빙글빙글 오르면 거대한 전망대 ‘스카이타워’가 있다. 높이 27m로 7층 아파트와 맞먹는다. 꼭대기에 서면 나무 위에 올라온 것처럼 흔들린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걸어온 길이 아득하게 내려다보이고 그 옆의 장대한 나무들도 발아래 펼쳐진다.

아래로 내려다보면 메타세쿼이아가 호위하는 나무데크 등산로를 따라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스라이 멀어지고 고개를 들어 시야를 멀리 두면 산 중턱에 자리 잡은 형제바위가 보인다. 그곳에도 전망대가 마련돼 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장태산 자연휴양림 숲 아래 산촌이 내려다보이고 저 멀리 장안저수지의 모습이 아련하다.

한국관광공사 대전충남지사 김세만 지사장은 “대전은 도심과 자연의 매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여행지로 교통이 편리해 전국 어디서든 접근이 쉬운 장점이 있다”며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요즘 대전 계족산과 장태산자연휴양림은 번잡한 도심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몸과 마음을 힐링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말했다.

여행메모

황톳길에선 신발주머니·물 준비… ‘맛있게 매운’ 두부 두루치기 별미


계족산 황톳길은 장동산림욕장을 찾아가면 된다. 경부고속도로 신탄진IC에서 내려 17번 국도를 타고 회덕 방향으로 간다. 이후 회덕과선교를 지나 유턴한 뒤 ‘장동’ 방면으로 우회전해 2㎞ 남짓 이동한 다음 우회전 하면 닿는다. ‘장동삼림욕장’ 표지판이 잘 안내해 준다. 대전역에서는 약 12㎞ 떨어져 있다. 황톳길을 걸으려면 신발주머니와 발 씻을 물을 조금 준비하는 게 좋다. 곳곳에 발을 씻을 수 있는 시설이 마련돼 있지만 계족산성 등산로 분기점 등에는 없기 때문이다.

장태산휴양림은 호남고속도로 서대전IC에서 나가 대전 방면으로 향하다 흑석네거리 쪽으로 8㎞쯤 이동한 뒤 좌회전해 4㎞쯤 가면 된다.

대전의 먹거리로는 ‘맛있게 매운’ 두부 두루치기가 유명하다. 선화동 광천식당(042-226-4751)은 40년 전통의 전문식당이다. 보기만 해도 벌겋게 얼굴이 달아오르는 두루치기 하나에 면 사리를 추가하면 2명 식사로 푸짐하다.

장동산림욕장 인근에 ‘계족산 황톳길 가든’(042-635-7755)은 흑두부 흑수제비 흑만두전골 등이 별미다. 검은콩을 직접 갈아 만든 보양식이다. 특히 들깨가루와 버섯을 가득 넣어 만든 흑수제비는 고소하고 담백하다.

대전=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