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최범] 생활문화 영웅이 필요하다

입력 2016-06-14 17:51

“오늘날 건축 취미를 가진 사람이 순수한 일본풍의 집을 지어 살려고 하면, 전기나 가스나 수도 등을 가설하는 위치에 대해 고심을 하게 되는데….”

일본의 소설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에세이 ‘음예예찬’은 이렇게 시작된다. 나는 이런 게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생활 속에서 하나하나 어울림과 아름다움의 문제를 고려하는 것, 그것이 바로 디자인인 것이다. 근대화 과정에서 서구 문화를 어떻게 하면 일본 전통문화와 조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던 당대의 지식인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그것을 가장 가까운 집안에서부터 찾아가는 바, 이 책은 바로 그러한 모색의 기록인 것이다. 다니자키는 서구 문화의 침투를 더 이상 막을 수 없다는 듯 짐짓 패배주의적인 제스처를 취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또는 동양 전통문화의 우월함에 대한 신념을 끝까지 버리지 않는 몽니(?)를 부린다.

손꼽히는 유미주의 작가인 그의 필치로 하나씩 그려지는, 공간을 중심으로 한 일본 문화의 특질들은 매혹적이다. 그 때문인지 이 책은 전 세계 건축학도들에게 필독서처럼 되어 있다. 아무튼 소설가가 쓴 에세이가 건축 교양서의 반열에 올라 있는 것은 주목할 일인데, 물론 거기에는 일본과 동양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이 작용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가까운 생활 주변에서부터 발견하고 만들어가는 문화와 디자인의 감각이다. 일본에는 이러한 부분에서 뛰어난 사람들이 아주 많다. 나는 이들을 가리켜 생활문화 영웅이라고 부르고 싶다. 물론 생활문화는 다수의 이름 모를 대중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새로운 생활문화의 형식을 창조하며 격을 높인 인물들이 존재한다. 그들이 생활문화 영웅이다.

일본의 생활문화 영웅 중에서도 첫 번째로 꼽아야 할 사람은 16세기의 선승 센노리큐가 아닐까 한다. 그는 일본의 다도(茶道)를 완성한 인물이다. 현대로 내려오면 도예가이자 요리연구가인 기타오지 로산진이 있다. 그릇을 음식의 기모노라고 주장한 그는 음식과 그릇의 완벽한 조화를 추구하면서 오늘날 일본식 상차림의 품격을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귀족적이고 비타협적인 이미지의 로산진과는 달리 별 볼일 없는 물건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거기에 민예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민예운동을 전개한 야나기 무네요시를 빼놓을 수 없다. 그가 설립한 일본민예관은 올해 설립 70주년을 맞아 ‘야나기 무네요시와 조선의 공예’ 특별전을 개최하였다. 그의 민예사상이 조선 공예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일본인들의 생활에서의 품격과 섬세함은 그저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수많은 생활문화 영웅들의 노력이 있었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어떠한가. 과거 도자기왕국이었음을 자랑하는 한국의 그릇은 지금 어떤 모습인가. 오늘날 한국인들의 표준적인 밥그릇이 된 스테인리스 식기는 박정희 대통령이 밥의 양을 줄이라고 지시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우리의 생활문화 영웅은 다소 엉뚱한 데서 등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그놈의 ‘스뎅’ 그릇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우리에게도 잡지 ‘뿌리 깊은 나무’를 만든 한창기 같은 인물이 있음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나는 ‘디자인 혁명’이니 ‘디자인 강국’이니 하는 것을 외치는 사람들에 의해 우리의 생활환경이 좋아질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에 주변 가까운 데서부터, 조그마한 부분에서부터 어울림과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사람들, 즉 이름 없는 생활문화의 영웅들에 의해서만 우리 삶은 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영웅은 정치나 고급문화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영웅이라는 말이 어색하다면 고수라고 불러도 좋다. 일상에서 품격과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그런 생활문화의 영웅이 필요하다.

최범 디자인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