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했다. 풀린 돈이 어디로 흐를지가 최대 관심사다.
통화 당국은 실물경제로 돈이 흘러들어 투자와 소비를 자극하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그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하반기 경기가 얼마나 안 좋다고 전망하기에 시장이 깜짝 놀랄 만큼 전격적으로 금리를 낮추는 거야?”란 질문을 던지는 순간 투자심리는 오히려 얼어붙을 것이다. 지금처럼 물건을 만들어도 팔리지 않아 재고가 쌓이는 때에, 미래에도 이런 상황이 지속되리라 예상되는 때에 어떤 기업이 감히 자금조달 비용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빚을 내 투자에 나서겠는가. 소비도 마찬가지다. 가계는 이미 소득 정체와 가계부채, 노후·주거·일자리 불안에 쓸 돈도 없고 있더라도 감히 지갑을 열지 못하는 처지다.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으로 돈이 흐를 가능성도 높지 않다. 경기 전망이 안 좋아 기업의 미래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할 거라 기대하는 투자자는 많지 않다. 특히 미국의 금리 인상, 중국의 경기 둔화, 영국의 브렉시트 같은 대외 불확실성과 외국인 투자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주식·채권시장으로의 ‘돈길’을 막기에 충분하다.
결국 갈 길을 잃은 돈은 부동산 시장으로 몰릴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고 강남 재건축 붐이 도화선이 되어 버블을 키울 수도 있다. 작년까지는 주택시장 활성화가 가계부채 급증이라는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실물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 게 사실이었다. 기준금리 인하와 LTV(주택담보인정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 완화, 전세가 급등이 맞물리면서 주택 매매 수요가 급증했고, 이것이 주택분양 붐으로 건설투자 증가로 이어져 경기 회복에 기여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주택경기는 이미 과열 양상을 띠고 있으며 2∼3년 후 공급 과잉을 우려하는 판이 됐다. 주택 건설로 이어지기보다 강남 재건축 시장으로 돈이 몰리면서 버블만 키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돈길’을 실물경제로 뚫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첫째, 정부가 추경을 편성하고 투자 활성화와 소비 활성화 대책을 추가로 내놔야 한다. 지금처럼 유효수요가 부족해 경기가 부진할 때는 정부소비와 민간소비, 투자를 확대하는 대책이 우선돼야 하고, 금리 인하는 보조적 역할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통화 당국이 먼저 기준금리를 인하해 경기 회복 여건을 조성한 만큼 정부는 추경 편성과 투자·소비 활성화 대책으로 화답해야 한다. 정책은 타이밍이다. 정부의 추가 대책 없이 이대로 열흘이 흐르고 한 달이 지나간다면 통화 당국의 전격적인 금리 인하는 부질없는 헛수고가 돼 버릴 것이며, 그것은 전적으로 정부의 책임이다.
둘째, 특단의 가계부채 대책으로 부동산 시장으로의 돈길을 좁히고 강남 재건축 붐이 버블로 비화되지 않도록 감시의 눈초리를 강화해야 한다. 먼저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에 한정되어 있는 여신심사 강화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 주택담보대출은 여신 심사를 강화하면서 왜 상가담보대출이나 신용대출에는 적용하지 않는지, 왜 은행권에만 적용하고 비은행권은 뒤로 미루는지 납득하기 힘들다. 같은 주택담보대출임에도 불구하고 집단대출에 대해서만 예외를 인정하는 것도 시정되어야 한다. 또한 LTV 적용 대상을 주택담보대출에서 상가나 토지 같은 비주택담보대출로 확대하고, 시장 충격을 고려해 점진적으로 LTV·DTI 규제 비율을 낮춰야 한다. 우리나라의 엄청난 가계부채 규모와 증가 속도에도 불구하고 유수의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한국의 가계부채 위험을 낮게 평가하는 이유가 LTV·DTI 규제 때문임을 잠시도 잊어선 안 된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경제시평-이준협] 풀린 돈, 어디로 흐를까?
입력 2016-06-14 19: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