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찾은 충북 진천군 초평면 산자락에 있는 초평반석교회(성낙주 목사) 마당엔 20대 후반의 전도사가 한 아이를 무릎에 태우고 그네를 타고 있었다. 옆에 있던 트램펄린에서 뛰어 놀던 아이들도 전도사에게 달려와 등에 올라타며 장난쳤다. 청년들이 별로 없는 시골마을 아이들은 전도사를 형이나 오빠처럼 대하며 좋아했다. 성낙주 목사는 “청주 청북교회 박재필 목사님이 보내주신 젊은 전도사가 이곳 시골교회의 다음세대를 키우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청북교회가 작은 교회 섬기는 방법=박재필 목사는 시골교회를 세워나가는 일에 관심이 많다. 한국교회가 성장하려면 농어촌 미자립교회들이 바로 서야 한다고 믿고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계속 고민했다. 단순히 돈으로 지원하는 건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대신 젊은 목회자를 심어주는 게 교회 자립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봤다. 시골교회의 가장 큰 고민인 다음세대 양육에 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초평반석교회를 알게 됐다.
불과 3년 전만 하더라도 초평반석교회엔 아이들이 한 명도 없었다. 2013년 8월 성 목사가 부임한 뒤 그의 자녀 3명으로 교회학교를 시작했다. 어르신들로만 구성된 교회는 몇 년이 지나면 사라질 게 뻔해 보였다. 성 목사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아이들 전도에 힘썼다. 두 달 만에 교회학교 학생이 20명까지 늘었다. 이젠 아이들을 돌보는 게 문제였다. 성 목사 혼자서 모든 아이들을 신경 쓰는 건 쉽지 않았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충청노회에 “보조비 대신 아이들을 챙길 젊은 목회자를 지원해 달라”는 요청도 했다.
이 같은 사정을 알게 된 박 목사는 지난해 4월 신태겸(28·대전신학대 신학대학원) 전도사를 초평반석교회에 보내고 사례비를 대신 부담했다. 신 전도사가 부임한 해에 초평반석교회는 처음으로 여름성경학교를 열었다. 신 전도사는 교회 예배당에서 아이들과 같이 자며 뒹굴었다. 신 전도사의 젊은 감성이 교회학교에 에너지가 됐다.
성 목사는 “다음세대를 세워나가는 데 목숨을 걸고 헌신한다는 마음으로 목회를 하고 있는데, 젊은 전도사가 시골교회에 와서 아이들을 훈련시켜주니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고마워했다.
초평반석교회는 인근 학교 아이들과 노인정에 붕어빵을 나눠주며 전도를 하고 있는데, 붕어빵을 만드는 기계도 청북교회가 후원했다. 현재 초평반석교회의 교회학교 학생은 47명까지 늘었다.
청북교회는 자체적으로 성경학교를 열기 어려운 농촌교회와 자립대상교회를 위해 2013년부터 매년 여름 연합성경학교를 열고 있다. 다음 달 28∼30일에도 교회 수양관인 ‘약속의 동산’에서 연합성경학교를 개최한다. 전국 30여 교회에서 학생과 교사 600명 정도가 참여한다. 박 목사는 “연합성경학교를 통해 시골교회에 교회학교가 시작됐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가장 기쁘다”며 “앞으로는 이들 교회에 대한 도움을 의료나 교육 지원 등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교회 손길이 훈풍 되기를”=박 목사는 2011년 11월 청북교회 담임으로 오면서 목회 방향을 ‘역사와 이웃에 공헌하는 교회’로 정했다. 12일 찾은 청북교회 입구 게시판엔 ‘이웃에 사랑을 나눠 줄 자원봉사자를 찾습니다’라는 글이 적힌 종이가 붙어있었다. 안내문을 붙인 ‘작은사랑선교회’는 청북교회 교인을 중심으로 구성된 봉사단체다. 장애인들의 운동을 도와주고, 혼자 사는 어르신들을 찾아가 반찬을 전해준다. ‘이웃에 공헌’이라는 박 목사의 목회 방향은 이미 청북교회 교인들의 가슴 속에도 스며들어 있었다.
청북교회는 다양한 방법으로 주변의 소외된 이웃을 섬기고 있다. 지난해부터 주거환경이 열악한 가정을 찾아가 집을 수리해 주는 ‘행복한 나눔의 집짓기’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달 28일엔 교인 16명이 교회 인근에 사는 김기남 할머니 댁을 방문했다. 지난겨울 연탄가스 사고로 아들을 잃은 김 할머니의 집엔 보일러가 고장난 채 방치돼 있었다. 교인들은 아예 보일러를 교체하고 전기배선도 새로 깔았다. 장판을 바꾸고 새 벽지로 도배했다.
청북교회 이정환 부목사는 “처음엔 할머니가 ‘당신들이 뭘 해줄 수 있겠느냐’며 마음의 문을 닫고 있었는데 수리된 집을 보더니 눈물을 글썽이며 고맙다고 했다”며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교인들도 모두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지난해 설에는 장모(89) 할머니의 집을 방문해 찬바람이 새어 들어오지 않도록 10㎝ 두께의 방한벽을 설치했고, 구멍난 천장을 튼튼한 목재로 교체해 줬다.
2014년 1월부터 차상위 계층에 속한 어르신 가정 60세대를 대상으로 전기료를 지원하고, 그해 10월엔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장애인과 조손가정 100세대에 1500만원 상당의 연탄과 등유를 전달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독거노인들에게 전기장판 이불 등유 등 2000만원 상당의 물품을 지원했다. 박 목사는 “동절기면 간간히 들려오던 어르신 동사 소식이 이젠 거의 들리지 않는다”며 “미력하지만 교회의 지원을 통해 차가운 사회에 훈풍이 돌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청북교회에 매년 5월의 한 주일은 ‘택시타고 오는 날’이다. 성도들이 교회에 올 때 택시를 타고 오도록 권한 뒤 기사들에게 시원한 음료와 운전할 때 필요한 용품, 설교 테이프 등을 선물로 건네도록 한다. 택시기사들의 수고를 위로하고, 지역경제에 도움을 주기 위해 정한 날인데 벌써 15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 서울 실로암안과병원과 연계해 눈이 보이지 않는 주민들이 무료로 진료·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고, 매년 설과 추석에는 어려운 이웃 120여 가구를 선정해 사랑의 쌀을 전달하고 있다. 지역사회를 위한 이 같은 헌신으로 박 목사는 지난해 5월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했다.
■청북교회 박재필 목사
'행동하는 신앙인' 본회퍼 영향 받아 세상을 돕는 이타적인 교회가 모토
박재필(청주 청북교회·사진) 목사가 시골교회에 젊은 목회자를 보내는 것이나 연합여름성경학교를 여는 것은 '지역의 작은 교회를 돕는 교회'가 되겠다는 뜻에서다. 박 목사는 39세 때 홍콩한인교회에 부임하면서도 비슷한 사역을 했다. '선교사를 돕는 선교사'로 일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선교사들을 위한 사역을 감당했다. 말레이시아와 보루네오 정글지역에 선교사를 파송한 뒤 후원했고, 비영리단체(NGO) 등 선교기관과 협력해 어려운 이들을 구제하는 일에 힘썼다.
그가 이런 목회 철학을 갖게 된 건 '행동하는 신앙인'로 유명한 독일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1906∼1945) 목사의 영향이 컸다. 그는 장로회신학대에서 공부할 때 본회퍼 목사의 책을 읽고 감명 받아 목회의 방향을 '이타적인 교회, 이타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정했다.
박 목사는 '한국교회가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돼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교회와 목회자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부정적으로 변해가고 있지만 교회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목사는 인터뷰를 마치기 직전 이런 당부를 했다.
"세상은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면서도 언제나 교회를 주시하고 있고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아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주변의 평가보다 스스로 주님의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느냐를 돌아보는 게 중요합니다."
청주·진천=글·사진 이용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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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교회-청주 청북교회] 시골교회에 젊은 목회자 세워 다음세대 키운다
입력 2016-06-15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