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보행길 서울역 고가] 산업화시대의 상징… ‘45년 서울 이야기’ 품은 채 보행공간으로 재탄생

입력 2016-06-14 19:10
산업화시대를 상징하는 서울역고가의 건설 구상은 1968년 8월 처음 공표됐다.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은 8월 15일 ‘서울 건설의 바이블’이라는 이름 아래 서울 건설 29개 계획을 발표했고 서울역고가 초기안인 ‘퇴계로-아현동 고가도로’를 포함시켰다.

서울역고가는 도심에서 한강 이남으로 쉽게 진출할 수 있도록 만리동을 출구로 서울대교(현 마포대교)를 지나 여의도와 영등포로 진행시키는 구상이었다. 즉 도심에서 여의도로 진출하는 가장 빠른 자동차전용도로였다.

서울역고가 공사는 69년 3월 19일 ‘서울역-아현고가 간 고가도로’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 첫 개통은 70년 3월 1일 동자동쪽 램프 준공을 통해서였다. 약 1년간 공사 끝에 퇴계로에서 진입한 차량이 서울역 앞에서 좌회전해 용산 및 제1한강교 방향으로 진출하는 길이 340m, 폭 6m 램프가 개통됐다. 두 번째 개통은 70년 8월 15일 서울역 서부역사를 넘어 중림동과 청파동 남북 방향으로 두 갈래의 램프 공사가 완공되면서였다. 동자동 램프와 합산해 총연장 1248m, 폭 6∼10m의 규모로 고가도로가 개통된 이날은 서울역고가의 준공일로 간주된다. 이 각별한 의미를 시사하듯 8월 15일 서울역고가 개통식에는 박정희 대통령 부부가 참석해 테이프 커팅을 함께했다. 이어 75년 10월 28일 퇴계로와 만리로를 연결하는 서울역 고가도로 연장공사가 완료됐다.

이후 70년대에서 80년대 초까지 간헐적 보수를 거쳐 80년대 중반에 시설물 전반의 안전과 관련된 보수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공개되지 않은 85년 10월 감사원의 ‘한강교량 및 고가도로 안전도 점검 결과’는 서울역고가의 붕괴 위험을 지적했다고 알려진다. 90년대 말에는 일부 램프가 철근 부식과 콘크리트 이탈로 철거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에 따라 재시공되기도 했다.

서울역고가 철거가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안전진단과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던 90년대 중반이었다. 이어 2000년대 들어서는 철거 문제가 본격 논의됐다. 하지만 2003년 4월 서울시는 고가 철거는 당분간 없고 대신 안전관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2006년과 2012년 정밀안전진단에서 D등급 판정을 받고 잔존수명이 2∼3년에 불과하다는 분석 결과가 나옴에 따라 2014년 조기 철거가 검토됐다. 그러나 서울역고가 재활용 방안에 대한 구조전문가 검토를 토대로 박원순 시장이 서울역고가 하이라인파크 조성 공약을 제시해 철거 논란은 일단락됐다.

김재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