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난 음악 예능 프로, 가수가 설 무대는 많지 않다

입력 2016-06-14 19:25
한국 재즈계의 떠오르는 스타로 불리는 피트정 퀄텟이 지난 4월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공연하고 있다.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스페이스 공감’은 뮤지션들이 서고 싶어 하는 TV 무대로 꼽힌다. EBS 제공

음악 예능이 넘쳐난다. 안정적인 시청률을 보장해주는 음악 예능이 하나둘씩 늘면서 방송 중인 프로그램만 7개 정도다.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한두 달도 버티지 못하고 폐지되는 혹독한 상황에서 음악 예능만큼은 선방하고 있다.

음악 예능의 범람은 실력파 뮤지션들을 TV에서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음악 예능이 대중음악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거나, 다양한 가수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늘었느냐고 묻는다면 “글쎄”라는 반응이 많다.

대중음악계 안팎에서는 오히려 ‘음악 예능은 늘었지만 가수가 설 수 있는 무대는 별로 없다’는 식의 비판이 많다. 앨범을 내면 음원 차트에서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한 뮤지션은 “음악 프로그램이 많아졌다지만 서고 싶은 무대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며 “음악으로 먹고 살기 힘들더라도 TV 출연을 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음악’ 아닌 ‘예능’에 방점 찍힌 음악 예능들

이런 냉소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은 왜 일까. 음악 예능이 뮤지션과 무대에 집중하기보다 ‘예능’에 방점을 찍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음악 예능은 재미, 흥미, 감동, 감탄 등의 감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극적인 요소들을 도입할 수밖에 없다. 최근 스타일의 음악 예능을 처음 만들어 낸 ‘나는 가수다’(MBC)에서는 ‘경연’이라는 장치를 도입했다. 최고의 실력파 가수들이 노래 대결을 하고, 그 중 한 명이 탈락하는 드라마틱한 상황은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끌어들이는 데 톡톡한 역할을 했다.

이후 대부분의 음악 예능이 경연을 하는 방식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프로그램에 따라 일반인과 함께 무대를 꾸민다던지, 복면을 쓰고 나온다던지 하는 식으로 변주하지만 프로그램의 본질은 ‘경연’에 있다. 누가 더 노래를 잘 하는지 혹은 누가 더 감동적인 무대를 펼쳤는지에 따라 방청객과 시청자의 선택을 받는다.

그렇다보니 나오는 가수들의 면면도 비슷비슷하다. 고음에 능한 실력파 보컬들, 로커들, 아이돌 가운데 뛰어난 가창력을 가진 몇몇 등 한정된 보컬 풀 안에서 겹치기 출연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음악 예능에서는 다룰 수 있는 음악의 범위가 현저하게 좁아진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보컬을 극대화할 수 있는 노래들, 귀에 익은 노래들이 주된 소재가 되기 때문이다. 인디신에서 오래 활동해 온 한 중견 뮤지션은 1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음악 예능의 문제를 이렇게 지적했다.

“보컬의 노래 실력에 초점을 맞추는 걸로는 음악을 제대로 담아낼 수 없어요. 노래 잘하는 가수만 좋은 음악을 만들어내는 건 아니잖아요. 다양한 음악을 경험하는 데 독이 될 수 있는 거죠. 물론 국카스텐처럼 오랫동안 힘들게 음악을 해 온 밴드가 뒤늦게 빛을 보게 된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국카스텐의 음악인지, 하현우의 보컬 실력인지 고민스러운 것도 사실이에요.”



‘음악’에 집중하는 음악 방송은 없나

음악 프로그램이 예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요 방송사마다 가요 순위 프로그램이 있고, 라이브 무대를 보여주는 교양 프로그램도 있다. 가요 순위 프로그램은 아이돌 음악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고, 음악에 집중하는 방송은 점점 줄어드는 게 현실이다.

그나마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게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과 EBS ‘스페이스 공감’ 정도다. ‘스케치북’은 대중적인 뮤지션들을 주로 다루는 반면, ‘공감’은 록, 재즈, 발라드, 힙합 등 장르 불문하고 다양한 뮤지션들을 소개한다.

‘공감’도 한 차례 위기를 겪었다. 2014년 방송 회차를 줄이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뮤지션들과 음악 팬들의 강력한 반발로 방송을 지켜냈다. ‘공감’은 오로지 음악에만 집중한다. MC도 없이 한 시간을 한 팀이 고스란히 책임진다. 세계적인 뮤지션부터 인디 밴드, 인기 가수까지 다양한 뮤지션들이 ‘스페이스 공감’을 거쳐 갔다.

이혜진 ‘스페이스 공감’ PD는 “뮤지션이 하고 싶은 음악을 원하는 대로 해내는 게 공감의 핵심”이라며 “제작진의 고민은 ‘그들의 음악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에 실려 있다. 음악이 배경이나 수단이 아닌 그 자체로 다뤄지다 보니 아티스트들이 욕심을 내는 무대인 것 같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