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상자는 담합의 판도라 상자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3일 폐지 수집부터 가공, 판매 등 모든 골판지 제조·유통단계에서 담합한 45개 제지사에 모두 1039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영세하거나 담합 가담이 미미한 3개사를 제외한 42개사를 검찰에 고발했다. 지난 3월 골판지 원지 담합에 따른 과징금 1108억원을 포함하면 이들 제지사가 물어야 할 과징금은 2147억원에 이른다.
택배상자 등 골판지 상자가 만들어지기까지는 모두 3단계 공정을 거친다. 원지 제조사는 수거한 폐신문지, 폐골판지를 사들여 원지로 만든다. 원단 제조사는 이 원지를 사들여 골판지로 만들고, 마지막으로 지함소는 이를 최종 제품인 골판지 상자로 제조한다. 한솔과 아세아제지 등 메이저 제지회사들은 이 모든 과정에 자회사를 두었고 이들 자회사의 시장점유율은 시장별로 50∼90%나 됐다. 이렇게 수직계열화된 제지사들은 원료를 사들일 때 짬짜미해 가격을 낮췄고, 제품을 판매할 땐 같은 방식으로 가격을 부풀렸다.
아세아제지 등 18개사는 폐골판지 구매단가를 담합으로 낮췄다. 수도권 등 광역별로 모임을 둬 수도권 메이저업체가 먼저 담합하고 이를 지방 계열사가 따라갔다. 태림포장 등 원지 제조 18개사는 골판지 원단 판매가격을 담합해 원단가격을 10∼25% 올렸다. 골판지 상자 제조사는 16개 대형 수요처에 납품할 때 상자가격 인상률과 인상시기를 합의했다.
골판지 외에도 한솔제지와 깨끗한나라 등 8개 제지사는 2008년부터 18차례 신문용지 원료를 구매하면서 담합을 저질렀다. 담합으로 인한 1차 피해는 유한킴벌리, CJ 등 골판지 상자를 많이 사는 업체들이 입었다. 그러나 이는 결국 제품가격에 포함돼 출고되기 때문에 그 피해는 소비자에게 돌아갔다. 공정위 정희은 카르텔조사과장은 “택배상자, 과자·화장품 상자 등 최종 소비재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만 소비자가 이를 알아내기 어려운 골판지 업계의 관행처럼 굳어진 담합을 적발했다”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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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합으로 만든 택배상자
입력 2016-06-13 1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