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헌법은 1987년에 만들어졌다. 군부독재에 맞선 민주화운동의 산물이다.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 대통령의 국회해산권 폐지 등이 당시 제9차 개헌의 골자였다. 이 헌법을 통해 장기집권이 봉쇄되고 국민에 의한 평화적 정권교체가 가능해졌다. 한국에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87년 체제’는 내년이면 꼭 30년이 된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13일 국회 개원사에서 개헌론을 꺼내들었다. 정 의장은 “언제까지 외면하고 있을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주춧돌을 놓겠다”고 말했다. 20대 국회가 개헌론과 함께 시작한 것을 환영한다. 새 시대에 맞게 국가운영 방식을 바꿀 때가 됐다. 개헌은 필요하고 여건도 나쁘지 않다.
강산이 세 번 바뀌면서 87년 체제는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용어가 됐다. 5년 단임제로 독재는 불가능해졌지만, 5년마다 정책의 연속성이 완벽하게 단절됐다. 대통령이 국회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없게 됐지만, 야당 대표와 차 한 잔 마시기도 어려운 불통이 고착됐다. 87년 체제는 1988년 소선거구제가 도입되며 완성됐다. 이 선거제도에 힘입어 지역주의 정치와 보수-진보 진영 정치를 지나왔다. ‘정권 견제’를 위해 만들어진 헌법 아래에서 대결의 정치로 30년을 보내는 동안 한국은 저성장·양극화, 저출산·고령화의 구조적 문제에 직면했다. 협력의 정치를 주문한 4·13총선 민의는 87년 체제가 수명을 다했다는 경고등이다.
현 정권은 개헌에 부정적인 입장을 여러 번 밝혔다. 내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치르게 된다. 남은 1년6개월 동안 개헌을 위한 토론과 준비의 시간을 갖고, 다음 정부에서 실행하는 로드맵이 가장 현실적일 것이다. 공론화를 주도할 책임은 국회에 있다. 의견을 적극 개진하고 실천을 약속하는 몫은 여야 대선주자들의 것이다. 과거 개헌론은 유력한 대선주자의 암묵적 반대에 번번이 무산됐다. 그럴 힘을 가진 이가 없는 지금이 호기일 수 있다. 방향은 분명하다. 비대한 권력을 나눠 대결을 지양하고, 구조적 문제에 협력해 대처하며, 백년지계를 실천할 수 있는 체제로 가야 한다. 개헌은 정권 획득의 수단이 될 수 없다. 그래선 국민의 지지도 동력도 얻지 못한다. 가장 효율적인 국가체계만을 고민해야 가능한 일이다.
[사설] 국회의장이 꺼내든 ‘개헌’… 토론과 준비 시작할 때
입력 2016-06-13 1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