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서울 은평구 진관외동 175번지는 기자촌(記者村)이 있던 곳이다. 지금은 은평뉴타운이 들어서 옛 모습은 사라졌지만 우리나라 대표 언론인들과 기자 출신 문인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기자촌이 형성된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우리나라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격변의 시기를 보냈다. 이 시기에 기자촌은 시대정신이 자라는 공간이었고 문학적 소양이 싹트는 토양이었다.
서울 은평구(구청장 김우영)는 뉴타운 개발과정에서 확보된 기자촌 부지에 국립한국문학관을 유치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은평구는 세계사적으로 유례없는 언론인 집단마을인 기자촌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의미와 함께 남북을 잇는 길목에 위치해 미래를 향한 문화공간으로서 통일시대를 대비할 수 있다는 상징성이 있다.
또 한국 근현대문학의 요람이라고 할 만큼 분단전후 한국대표문인들의 주 활동무대로서 지역 곳곳에 문인들의 발자취가 남아있다. 녹번동에 위치한 ‘정지용 초당’은 1948년부터 1950년 납북되기 전까지 정지용 시인이 거주했던 공간이다. 은평구는 현대근대시의 선구자 정지용이 납북직전까지 거주했던 생가 마지막 집터 위치를 확인해 지난 4월 26일 정지용 초당 터 표지판을 설치했다. 신사동에 위치한 윤동주 시인의 모교인 숭실중·고(전신 숭실학교)는 1938년 일제의 신사참배 거부로 강제 폐교되는 일이 발생했는데, 이 사건은 시인의 일제 저항 활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또 은평은 소설가 이호철, 최인훈이 당시 금기시됐던 분단과 통일의 시각으로 ‘남과 북’ ‘광장’ 등의 역작을 집필했던 곳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분단문학의 거장 소설가 이호철은 현재 불광동에서 50년째 거주하며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김훈 작가는 20여년간 진관동과 불광동에서 거주하며 아버지로부터 문학수업을 받았다. 해방과 전쟁 직후부터 가난한 문인들이 모여살기 시작하면서 은평은 서울의 ‘문인촌’으로 불렸다.
아울러 2022년 신분당선 기자촌역이 완공되기 때문에 접근성이 좋고 ‘韓문화체험특구’, 역사한옥박물관, 한글창제의 비밀아지트였던 진관사 등 주변 문화시설과의 연계성도 뛰어나다.
은평구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요구하는 부지 1만5000㎡ 이상을 즉시 확보해 언제라도 착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준비된 후보라고 할 수 있다. 또 문학 관련 자료의 수집과 정리, 보존을 위한 충분한 공간으로 확장이 가능하고 문학관 내·외부 영역 간 기능적 배치, 시설·공간의 효율성과 편의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마지막으로 천혜의 자연 ‘북한산’에 둘러싸여 있다. 문체부도 공해요소로부터 격리, 시설이용에 따른 쾌적성, 문화예술적 감수성을 높일 수 있는 환경을 중요한 요소로 보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기자촌은 천혜의 명산인 북한산과 맞닿아 있어 쾌적하고, 문학적 감성을 일으키는 최적의 장소로 평가된다. 작은 입지에 들어서면 장기적으로 옹색해질 수 있지만 은평구에서는 북한산이 문학관의 뜰로서도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은 큰 장점이다.
은평구는 지난 4월 1일 소설가 이호철씨를 위원장으로 한 ‘국립한국문학관 유치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어 같은 달 19일 은평에 연고가 있는 문인 100여명의 작품을 전시하고 이호철, 김 훈 토크콘서트도 열었다.
은평구는 한국문학관 유치를 계기로 주변의 문인 및 명인마을, 언론기념관, 다문화박물관, 고전번역원 등을 연계해 문학테마파크를 조성할 계획이다.
김우영 구청장은 “근현대 문학의 요람, 통일문학의 중심지,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역사 및 문화가 깃든 ‘기자촌’에 한국문학관을 유치해 은평을 한국문학의 허브로 키우겠다”고 말했다.
김재중 기자 jjkim@kmib.co.kr
[국립한국문학관 유치 열기 현장을 가다] 근현대 문학의 요람… 접근성·문화시설 연계성 월등
입력 2016-06-13 18: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