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이슈] ‘브렉시트’ 블랙홀 열리나

입력 2016-06-13 20:49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Brexit) 국민투표가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오는 23일(현지시간) 투표를 앞두고 찬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던 여론이 최근 EU 잔류 쪽으로 기울고 있긴 하지만, 부동층이 많아 결과를 섣불리 짐작하긴 어렵다. 영국 내에서는 탈퇴를 놓고 계층과 세대 간 입장 차이가 뚜렷해지고 있다. 영국 밖에서는 브렉시트 이슈가 세계 경제의 또 다른 뇌관이 될까 가슴을 졸이고 있다.

여왕도 브렉시트 지지?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2013년 1월 영국 내 반EU 정서가 확산될 때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꺼내든 카드였다. 영국 안에선 EU에 내는 부담금이 과도하고, 밀려드는 이민자 때문에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불만이 늘 있었다. 당시 캐머런 총리는 2017년까지 EU 탈퇴 관련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해 5월 총선에서 보수당이 단독 정권으로 올라서면서 국민투표는 현실화됐다. 보수당을 탈퇴한 의원들도 총리를 압박했다. 결국 올해 2월, 캐머런 총리는 EU와 협상을 벌인 뒤 국민투표로 최종 결정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EU는 영국이 요구하는 방안을 대부분 수용했다. 유로화 사용을 요구하지 않고, 이민과 자유 이동도 다른 회원국과 달리 영국에는 특별 지위를 유지시켜주겠다는 방안이었다.

이런 와중에 유력 일간지 더선이 지난 3월 ‘엘리자베스2세 여왕이 브렉시트를 지지한다고 보도했다. 왕실은 즉시 해당 기사를 독립언론윤리위에 제소하면서 “여왕은 63년의 재위 기간 동안 정치적 중립을 지켜왔다”고 해명했다.

영국 국민의 여론은 팽팽하다. 여론조사 때마다 찬반을 오가며 요동친다. 파이낸셜타임스와 블룸버그의 여론조사에선 지난 5일 기준으로 EU 잔류 의견이 45∼47%로 집계돼 탈퇴 의견을 2∼3% 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기관의 이코노미스트나 도박 사이트 등 전문가 집단에서는 일반 국민보다 잔류 가능성을 더 높게 보고 있다.

경제위기, EU·이민자 탓?

영국 국민의 EU 탈퇴 여론은 만성화된 경제위기와 부실한 사회안전망,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근거를 두고 있다. 저소득층과 중장년층 이상에서 탈퇴 의견이 높다. 반면 전문직 등의 고소득층과 청년층에서는 잔류 의견이 많다.

NH투자증권은 “이런 현상은 경제 전체 상황이 아니라 중장년층의 분노가 반영된 것”이라며 “이들의 불만은 젊은 시절 고생해서 일했는데 나이 들어서도 쉬지 못하고, EU에 남아있자니 그리스를 돕거나 이민자들까지 먹여 살려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고 분석했다. 자녀들이 대학을 졸업할 무렵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고,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은퇴 후에도 일을 계속 해야 하는 이들의 불만이 EU를 향한 적대감으로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의 설문조사에서 영국인들은 EU 잔류가 대기업·금융기관·고소득층에 유리하고, 소기업·저소득층·구직자에게 불리할 것이라고 답했다. 인구 대비 이민자 비중이 적은 스코틀랜드에서는 잔류 여론이 높고, 이민자 비중이 높은 웨일스 지방에서는 탈퇴 여론이 높은 것도 이런 맥락이다.

브렉시트 되면 세계경제는?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14∼15일(현지시간) 열리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와 함께 6월의 2대 글로벌 이벤트로 꼽힌다. FOMC의 경우 지난달 미국 고용지표 부진으로 금리인상 가능성이 낮아진 반면, 브렉시트 이슈는 불확실성이 여전히 크다.

영국 재무부는 지난달 발표한 분석보고서에서 브렉시트가 현실화할 경우 2018년까지 영국에서는 실업자가 최대 82만명(실업률 2.4% 포인트 상승) 늘어나고 경제성장률은 6.0%가 줄어드는 충격이 올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올해 초 영국이 EU를 탈퇴해야 한다는 여론이 잔류 여론을 앞서자 영국 파운드화 가치가 하락하고, 브렉시트의 위험이 높은 은행주와 관련 대기업의 주가도 폭락했다. 최근에는 잔류 여론이 탈퇴 여론을 앞서는 여론조사들이 많아지면서 시장이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투표 결과에 따라 상황이 뒤바뀔 수 있다.

영국의 경기위축은 인근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국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파운드화 및 유로화 가치가 동반 하락해 국제금융시장 불안으로 전염될 가능성이 높다. 국제금융센터는 13일 “브렉시트가 발생하면 영국 수출 비중이 큰 아일랜드·벨기에·네덜란드에 큰 타격이 예상되고, 남유럽 국가들의 국채금리가 상승하는 등 금융시장 불안도 커질 것”이라며 “각국 극우파 정치인들의 반EU 캠페인과 같은 정치리스크가 부각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유럽 정치에도 혼란이 예상된다. 브렉시트가 가결되면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에서는 EU 재가입을 위해 독립투표를 벌이겠다고 공언하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영국의 반대로 EU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던 아이슬란드는 다시 가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영국의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EU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 경제 문제는 해결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독일·프랑스 등이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한국도 영국과 다시 FTA를 논의해야 한다.

백상진 김지방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