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절망의 터널… 취업 장수생들 ‘신음’

입력 2016-06-13 04:00

지난 3일 오전 5시30분쯤 서울 중구 서울역파출소에서 만난 이모(38·여)씨는 두 눈을 부릅뜬 채 불안한 얼굴로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이씨는 가족이 애타게 찾던 가출인이었다.

경남 밀양에서 발견된 이씨는 새벽기차를 타고 서울역으로 올라왔다. 이씨가 연고도 없는 밀양에 왜 갔는지는 열흘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도 모른다. 그날 파출소 앞에서 만난 이씨의 아버지는 “딸이 임용고시를 오랫동안 준비했는데 연달아 낙방하면서 조울증과 불안 증세가 갈수록 심해졌다”며 “가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이씨는 지난해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은 서울역에 도착한 이씨를 안정시키려고 3시간 가까이 애를 먹었다고 했다. 이씨의 아버지는 “돈을 벌어오라는 말도 안 했는데 딸이 취업 스트레스로 자해를 하고 차도로 뛰어들려고 하는 등 정신이상 증세를 보인다”며 “대학원까지 보내면 끝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청년실업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취업 장수생’이 늘고 있다. 구직 단념자, 대학 졸업을 미루는 학생, 각종 시험 준비생이 넘쳐난다. 취업 장수생은 실업률 통계에 잡히지 않는 ‘유령’이다. 이 때문에 지난 4월 청년층(15∼29세)의 명목실업률은 10.9%이지만 체감실업률은 24.1%로 배가 훨씬 넘었다.

5년째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인 이모(31)씨는 대표적 취업 장수생이다. 일반 공무원 시험만 치르다 지금은 경찰공무원 시험도 함께 준비하고 있다. 이씨는 “노량진에서 공시생끼리 만나면 ‘부끄럽다’ ‘죽고 싶다’ 식의 얘기가 주를 이룬다. 고등학생처럼 어려 보이는 학생들이 공무원 시험에 목매는 것을 보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경제적 불안과 의존은 부록처럼 따라다닌다. 수도권 대학을 졸업하고 3년째 취업 준비를 하는 최모(27)씨는 “매달 월세와 생활비가 70만원 정도 나간다. 부모에게 손을 벌리는데 경제적 압박이 크다”고 했다. 2년차 공시생인 한모(27)씨는 혼자 생계를 유지해온 공무원 어머니가 최근 퇴직하면서 매달 학원비, 생활비를 퇴직금에서 빼다 쓰고 있다.

긴 취업 준비시간은 불면증, 우울증 등 극심한 정서불안을 낳고 있다. ‘극단적 선택’으로도 이어진다. 한 공시생이 아파트에서 투신해 출근하던 공무원까지 숨지게 된 ‘곡성의 비극’도 이면에 청년실업이 자리 잡고 있다. 남민 서울시립은평병원장은 12일 “장기간 취업 준비를 하면서 불안증이 계속 쌓이면 정신병적 상태로도 갈 수 있다”며 “심해지면 조현병과 피해망상 등으로 악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취업 스트레스가 장기간 지속될수록 뿌리치려 하기보다는 상황을 수용하고 객관적 진단과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다”며 “정확한 통계는 집계되지 않지만 취업 스트레스로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는 청년층이 꽤 된다”고 전했다.

강창욱 권준협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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