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파이널, ‘스몰볼’의 역습

입력 2016-06-13 19:41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스티븐 커리와 드레이먼드 그린, 클레이 톰슨(왼쪽부터)이 지난달 9일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모다센터에서 열린 NBA 플레이오프 4강 4차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를 제압한 뒤 기뻐하고 있다. AP뉴시스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이끄는 '빅3' 카이리 어빙과 르브론 제임스, 케빈 러브(왼쪽부터)가 지난 4월 10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유나이티드센터에서 열린 NBA 정규리그 시카고 불스와의 경기에서 공격에 성공한 뒤 백코트를 하고 있다.AP뉴시스
“리바운드를 지배하는 자가 경기를 지배한다.”

농구만화 ‘슬램덩크’에 나오는 명대사다. 높이와 힘의 중요성을 뜻하며 ‘농구는 센터하기 나름’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전통적으로 장신 센터를 보유한 팀은 강했다. 하지만 미국프로농구(NBA) 파이널에 오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보면 센터 없는 농구로 경기를 지배한다. 높이를 포기한 대신에 기술과 스피드를 활용하는 ‘스몰볼’을 구사한다. 신장 2m 이상의 선수들이 3점슛을 거리낌 없이 쏜다. 포인트 가드와 슈팅 가드를 넘나드는 ‘듀얼 가드’가 대세다.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는 ‘포지션 파괴자’도 있다.

NBA에서만 스몰볼이 대세인 건 아니다. 지난 시즌 KBL 챔피언 결정전에서 고양 오리온은 스몰볼의 반란을 일으켜 우승했다. 전주 KCC는 ‘단기전의 제왕’ 하승진(221㎝)을 보유하고도 준우승의 고배를 마시지 않았는가. 현대 농구에서 스몰볼은 부정할 수 없는 또 하나의 흐름이 됐다.



같은 듯 다른 골든스테이트와 클리블랜드의 스몰볼

골든스테이트의 농구는 NBA 스몰볼의 대표격이다. ‘빅3’로 불리는 스티븐 커리(28·191㎝), 클레이 톰슨(26·201㎝), 드레이먼드 그린(26·201㎝)을 중심으로 파이널 2연패에 도전하고 있다. 올 시즌 정규리그에서는 73승 9패로 NBA 사상 단일 시즌 최다승 기록을 갈아 치웠다.

골든스테이트가 스몰볼을 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그린의 존재 때문이다. 그린은 내외곽 공격과 수비가 모두 가능하다. 포지션은 파워 포워드지만 3점슛을 쏘고 기동력이 좋다. 센터 앤드류 보거트(213㎝)를 두고도 그린을 기용한다. 사전 기획을 마친 스몰볼이라 할 수 있다.

골든스테이트는 드리블을 최소화하고 끊임없는 패스를 통해 상대 수비를 무너뜨린다. 여기에 선수들이 포지션과 상관없이 적극적으로 스크린에 참여한다. 픽앤롤과 컷인 등 다양한 공격 전술이 나온다. ‘쌍포’ 커리와 톰슨을 비롯해 슛 기회가 생기면 언제든 3점슛을 던질 수 있는 선수들이 많다. 높이가 낮은 대신 한발 더 빠른 농구로 정신없이 공격을 퍼붓는다. 골든스테이트는 클리블랜드에 비해 빅3에 대한 득점 의존도가 낮다. 주전-비주전간 전력차가 적다. 빅3가 조금 부진해도 메워줄 선수들이 있다.

클리블랜드에도 빅3가 있다. 카이리 어빙(24·191㎝), 르브론 제임스(32·203㎝), 케빈 러브(28·208㎝)가 그 주인공이다. 클리블랜드 역시 올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스몰볼과 폭발적인 3점슛으로 재미를 봤다.

클리블랜드는 사실 지난해 파이널 때만 해도 빅볼을 추구하는 팀이었다. 러시아 출신의 장신 센터 티모페이 모즈코프(216㎝)가 파이널에서 경기당 평균 14점 7.5리바운드로 골밑에서 제 몫을 해줬기 때문이다. 비시즌 동안 무릎 수술을 받았던 모즈코프는 기량을 제대로 회복하지 못하고 결국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 클리블랜드는 센터 없이 새로운 돌파구를 찾다보니 스몰볼을 하게 됐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클리블랜드 스몰볼의 중심에는 포인트 가드부터 센터까지 전 포지션을 소화하는 제임스가 있다. NBA 최고의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상대 수비수 2∼3명을 자신에게 집중시켜 진영을 무너뜨린다. 이후 외곽으로 내어주는 패스를 통해 팀 동료들의 슛 기회를 열어준다. 클리블랜드도 빅3를 포함해 J.R 스미스, 채닝 프라이 등 3점슛에 능한 선수들이 많다. 하지만 골든스테이트의 스몰볼에 비하면 공격 전술이 단조롭다. 클러치 능력이 탁월한 빅3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빅3가 부진하면 전체적으로 무너지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의 클리블랜드 공격은 제임스의 손에서 시작된다. 제임스가 막힐 때 더 그렇다. 그럼에도 리그에서 제임스를 제대로 막을 수 있는 선수는 극히 드물다. 제임스의 존재 자체가 클리블랜드 스몰볼의 최대 강점이다.



스몰볼 vs 스몰볼, 그 승자는?

파이널 4차전까지 시리즈 전적 3승 1패. 골든스테이트는 남은 3경기에서 1승만 거두면 파이널 2연패를 달성한다. 커리와 톰슨은 3차전까지 경기당 평균 28점 3점슛 5.3개를 합작했다. 정규리그에 비하면 부진한 성적표다. 4차전에서는 둘이서 63득점(3점슛 11개)을 올리며 부활했다. 이들의 부진에도 골든스테이트가 시리즈 전적에서 앞설 수 있었던 건 나머지 선수들의 고른 활약 덕분이었다.

반면 클리블랜드는 제임스가 해결사 역할을 하지 못한 경기를 어김없이 내줬다. 치명적인 허점을 드러낸 것이다. 제임스는 1,2차전에서 트레블링 등 잦은 실책을 범했다. 승부처나 후반전에 득점력이 떨어졌다. 러브가 뇌진탕 증세로 빠진 3차전에서는 어빙과 함께 62점을 합작했다. 4차전에서도 25점 13리바운드 9어시스트로 트리블 더블급 활약했지만 뒷심이 부족했다.

두 팀은 14일(한국시간) 골든스테이트의 홈구장 오라클 아레나에서 파이널 5차전을 맞이한다. 골든스테이트는 홈에서 파이널 2연패 사냥에 나선다. 벼랑 끝 위기에 몰린 클리블랜드는 시리즈 전적을 뒤집기 위해 총력전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박구인 기자 captain@

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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