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의 ‘나홀로 등산’에 빨간불이 켜졌다. 경기도 의정부 사패산 살인사건도 수락산 사건과 마찬가지로 여성 등산객의 돈을 노린 강도 살인으로 잠정 결론 났기 때문이다. 생면부지의 나홀로 여성 등산객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 범행을 저지른 뒤 자수한 점 등 두 사건은 여러 면에서 ‘판박이’다.
경기 의정부경찰서는 금품을 빼앗기 위해 혼자 산행에 나선 50대 여성을 목 졸라 살해한 혐의(강도 살인)로 정모(45)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12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일정한 주거와 직업 없이 일용 노동자로 생활하던 정씨는 범행 당일인 7일 오전 10시쯤 사패산에 올라 소주 1병을 마시고 3시간가량 잠을 잔 후 배회하다 오후 3시쯤 혼자 음식을 먹고 있는 피해자 정모(55)씨를 발견했다. 순간 돈을 빼앗을 목적으로 피해자 정씨의 목을 조르고 머리를 가격해 살해한 뒤 지갑을 빼앗아 달아났다.
정씨는 피해여성의 가방 안에서 지갑을 빼앗은 뒤 현금 1만5000원만 챙기고 범행 장소에서 200m를 내려가다가 등산로 미끄럼방지용 멍석 아래 지갑을 숨긴 것으로 확인됐다. 지갑 안에 도서관 카드와 신용카드는 그대로 있었다.
범행 후 도주했던 정씨는 사건 발생 3일 만인 지난 10일 오후 10시55분쯤 경찰에 전화를 걸어 자수했다. 범행 이후부터 스마트폰으로 이번 사건 관련 기사를 계속 검색하다가 시신 발견, 현장에서 DNA 검출 등의 보도를 접한 뒤 압박을 받아 자수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경찰은 살해된 정씨의 옷이 반쯤 벗겨져 있고 현장에서 체모가 발견된 점을 토대로 성폭행을 시도하지 않았는지 추궁했지만 혐의를 밝혀내지는 못했다.
정씨는 “피해자 정씨가 쫓아오지 못하게 하려고 바지를 내렸으나 성폭행은 하지 않았다”고 진술했고 돗자리에서 발견된 체모도 정씨의 것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경찰은 피의자가 죄를 가볍게 만들 의도로 허위 진술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성폭행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사패산과 7㎞가량 떨어진 수락산에서 열흘 전 발생한 강도 살인 사건과 여러모로 닮았다. 수락산 사건의 피의자 김학봉(61)씨가 돈을 빼앗으려 살해했다고 자백한 것처럼 이번 사건 피의자 정씨 역시 살해 동기가 돈 때문이라고 했다. 나홀로 여성 등산객을 범행 대상으로 했고 피의자들이 범행을 저지른 뒤 자수한 사실까지도 비슷하다.
이제 관심은 정씨의 신원 공개 여부다. 수락산 피의자 김씨는 현장검증이 진행된 지난 3일 경찰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얼굴과 이름이 공개됐다.
사패산 사건을 지휘하고 있는 경기북부경찰청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수락산 사건과 유사한 점이 많지만 흉기 소지, 피의자의 전과 등을 감안할 때 정씨의 얼굴이나 신상 공개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정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은 13일 오후 2시 의정부지법 단독심리로 열린다.
의정부=김연균 기자 yk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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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6-13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