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오너 일가의 경영권 분쟁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대규모 비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된 마당에 ‘형제의 난’이 또 고개를 들었다. 이달 말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표 대결을 벌일 거라고 한다. 신 전 부회장 측은 신 회장의 이사직 해임안을 주총에 상정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0일 롯데그룹 압수수색이 단행되자 즉각 성명을 내고 ‘경영 정상화를 위한 긴급 협의’를 일본 롯데홀딩스와 종업원지주회에 요구했다. 해외출장 중인 신 회장은 귀국해 수사에 임하는 것보다 일본 주총 대응이 더 급해졌다. 주총은 지분 27.8%를 가진 종업원지주회가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 그룹이 한국 검찰 수사를 받게 됐는데, 오너라는 이들은 “거 봐라” “아니다” 하며 일본 종업원들에게 먼저 달려가는 꼴이 됐다.
롯데그룹은 컨트롤타워인 정책본부와 호텔롯데 롯데쇼핑 롯데정보통신 등 6개 계열사가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수천억원대 비자금 의혹부터 면세점 뒷돈, 가습기 살균제 인명피해까지 혐의도 다양하다. 모두 기업의 도덕성과 직결된 문제인데, 오너 일가의 추태가 더해졌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장녀 신영자씨는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에게 롯데면세점 자리를 내주고 20억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직함을 갖고 다니며 뒤에선 이런 탐욕을 부렸다는 게 확인되면 대국민 사과라도 해야 할 판이다. 그런데 장남과 차남은 장녀 문제로 가속화된 비자금 수사를 오히려 계기 삼아 경영권 싸움에 나섰다. 과연 이들에게 우리나라 5위 그룹을 맡겨도 되는지, 롯데가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당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케 한다.
롯데를 향한 국민적 시선은 “한국 기업이 맞느냐”는 의문을 품었을 만큼 차가워졌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그동안 투자 의지를 천명하고 핵심 계열사 상장을 추진해온 것 아닌가. 오너 일가의 한심한 모습이 계속되면 다 물거품이 될 수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직원과 주주,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재계 5위 그룹의 추락은 국가경제에 타격을 입히고 국민의 삶에 상처를 줄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그 책임이 오너 일가에 있다면 국민은 그들의 경영권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신뢰를 저버리는 행태는 당장 중단하는 게 현명하다.
압수수색이 기습적으로 이뤄진 건 노골적인 증거인멸 정황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롯데그룹이 살아남는 길은 수사에 성실히 임하고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는 것뿐이다. 이번 수사를 통해 제2 창사의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수사는 롯데그룹의 비중에 걸맞게 정치적 시비가 없도록 공정해야 하며, 동시에 국민이 경영진의 자격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도록 엄중하게 이뤄져야 한다.
[사설] 이 판국에 경영권 다투는 롯데 일가, 그룹 이끌 자격 있나
입력 2016-06-12 1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