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버매트릭스’ 신봉은 변하지 않는다

입력 2016-06-12 18:07 수정 2016-06-13 01:23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시애틀 매리너스 단장 제리 디포토(48·사진)의 선수시절은 화려하지 않았다. 미국 버지니아커먼웰스대학을 졸업한 1989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3라운드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지명을 받았지만 선수 경력의 대부분은 불펜투수였다.

MLB 데뷔 준비기간은 4년. 1993년 처음 밟은 MLB 마운드에서 8년간 27승 24패 49세이브 평균자책점 4.05를 기록했다. 평균 이상의 실력을 가진 선수가 두 시즌이면 쌓을 승수가 그의 전체 성적이었다. 32세의 어린 나이로 은퇴했다.

그러나 야구인생까지 끝낼 수 없었다. 2003년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스카우트로 전향했다. 마운드가 아닌 사무실에서, 공이 아닌 서류를 만지작거리는 그에게 이제 야구는 선수의 성적과 가치를 나열한 숫자로만 존재했다. 그의 진짜 적성은 여기에 있었다. 짧은 실전경험 탓에 선수를 직접 보고 판단하는 안목은 부족했다. 하지만 통계를 바탕으로 선수 활용법을 찾는 능력은 탁월했다. ‘세이버매트릭스(Sabermetrics)’ 신봉자인 디포토는 재무제표처럼 숫자로 빼곡한 선수명단을 작성했다.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의 상대 전적을 분석해 타순과 선발 로테이션을 구성했고, 선수를 영입할 때 1승을 안길 가능성(WAR 지수)을 따졌다.

감독을 불쾌하게 만들었고, 선수들과 신뢰를 쌓기 어려운 운영방식. 그래도 그는 이런 야구철학을 철회하지 않았다. 2012년부터 단장을 지낸 LA 에인절스에선 불협화음으로 실패했지만, 시애틀 매리너스에선 팀 리빌딩을 단행할 적임자였다. 디포토는 시애틀의 40인 로스터에서 절반 가까이를 갈아엎고 일부 포지션에 플래툰 시스템을 적용했다.

이대호(34)와 애덤 린드(33)가 경쟁하는 1루수는 그 핵심이다. 디포토는 린드를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영입할 때 지난 세 시즌의 통계를 분석했다. 그리고 ‘우완투수에게 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완선발에 린드, 좌완선발에 이대호’가 원칙으로 굳어진 이유다.

12일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세이프코필드에서 열린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홈경기에서 이대호를 뺀 선발명단은 사실상 디포토의 작품이다. 시애틀은 텍사스 우완선발 콜비 루이스(37)가 나오자 전날 연타석 홈런을 친 이대호를 빼고 린드를 투입했다.

스캇 서비스(49) 감독은 디포토가 시애틀로 옮기면서 세운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이대호가 아무리 잘해도 디포토의 ‘냉혹한 손’은 플래툰 시스템을 거둬들이지 않을 모양이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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