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배제가 아닌 포용으로, 혐오가 아닌 이해와 배려로, 두려움이 아닌 사랑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일상에서 이런 복음에 따른 삶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때로 ‘만나보나 마나’ ‘들어보나 마나’ ‘생각해보나 마나’ ‘가보나 마나’ 이런 식의 말을 합니다. 그러나 진실은 나와 우리의 선입견, 고정관념, 편견, 거부감, 혐오감, 두려움 너머에 있을 때가 많습니다. 만나보니, 들어보니, 생각해보니, 가보니 ‘다르더라’고 깨닫는 경험을 하곤 합니다. 2016년 지금 우리는, 이렇듯 분별하는 지혜가 매우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본문은 수가성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여자는 사람이 아니던 시절, 여자의 일생은 인간답지 못한 삶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그런 시대를 살았던 여성입니다. 스스로 여자로 태어나기로 선택한 것이 아니었지만 그로 인한 차별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예루살렘 사람, 유대인들에게 사마리아 사람들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개처럼 취급하던 이방인들을 받아들인 곳에도 사마리아인들은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사마리아인으로 태어난 것은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 때문에 차별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딱한 처지와 형편은 이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여섯 번째 남자와 살고 있는 처지였던 것입니다. 남성이 일방 통보하는 이혼이 난무했던 시절이라 이혼녀가 많았습니다. 이혼녀가 재혼한 건 그나마 형편이 잘 풀린 경우입니다. 버림받은 이혼녀들이 선택할 수 있는 생계수단은 생계형 성매매와 첩살이였습니다. 이는 투석형에 처해질 수 있는 간음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이렇게 모든 악조건을 달고 있었습니다.
당시 사회적 통념과 공감대, 전통과 관습, 그리고 서기관과 바리새인, 제사장들은 이들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지지하고 가르치고 정당화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태어날 때의 조건, 즉 인종과 성별, 사회적 신분 등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을 마주하신 예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조건을 갖고 태어나 평생 복음 한 번 들어보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들에게 어떤 존재가 되라고 하시나요?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 안팎의 크고 작은 두려움과 혐오감을 어떻게 직면해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혐오와 배제에는 사회적 통념과 전통 등의 지지를 받는 나름의 권위와 근거가 주어집니다. 그럼에도 그 근거와 권위 밖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또 어떤 혐오를 받는 이의 이웃이 된다는 것이 결코 그의 행동이나 정체성을 맹목적으로 지지하거나 동조, 묵인하는 것을 뜻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특정 집단과 개인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과 혐오가 하나님의 사랑을 막아설 수는 없습니다. 두려움과 혐오를 조장하고 확산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주목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유대와 사마리아, 땅끝이라는 문화적 사회적 인종적 종교적 장벽을 넘어 사람을 만나고 나누고 사귀고 섬기면 좋겠습니다.
김동문 목사(인터서브 사역자)
◇약력=△한국외대 아랍어과, 총신대 신대원 졸업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 신학석사 △이집트, 요르단 등 중동 선교
[오늘의 설교] 배제를 넘어 포용을, 혐오를 넘어 사랑을
입력 2016-06-12 20:46 수정 2016-06-12 2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