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前 라이벌이 후원자로… 오바마 “나는 힐러리 편”

입력 2016-06-11 04:00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한다고 공식 선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또 다른 민주당 대선 경선주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9일(현지시간) 백악관 뜰을 걸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왼쪽 위 사진은 2007년 6월 민주당 대선 경선에 참여했던 클린턴이 TV 토론에서 오바마 후보를 공격하고 있는 모습. 아래 사진에선 2011년 5월 오바마 대통령이 중동 문제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단상을 오르다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을 지나치고 있다. AP뉴시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의 8년간 우정이 드라마틱하다. 대권을 놓고 격렬하게 경쟁했던 경선 라이벌이 국정의 동반자로 호흡을 맞추더니 이제는 정권을 잇는 후계자와 정치적 후원자 관계로 발전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클린턴 지지를 선언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클린턴의 선거 캠페인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동영상에서 “클린턴보다 대통령 자리에 더 적합한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그녀는 대통령 직무를 잘 해낼 용기와 열정과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 나는 그녀의 편”이라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동영상을 지난 7일 녹화했다. 클린턴이 경선 승리 선언을 하기 몇 시간 전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캘리포니아 경선을 치르기 이틀 전인 지난 5일 이미 클린턴의 경쟁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클린턴 지지 의사를 전하고 양해를 구했다. 경선 내내 중립을 지키던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막판에 클린턴 지지를 서두르는 파격 행보였다.

오바마와 클린턴은 8년 전 민주당 경선에서 ‘적’으로 맞붙었다. 그러나 오바마의 경선 승리 후 클린턴은 깨끗이 승복하고 전국을 돌며 오바마를 지원했다. 오바마는 그런 클린턴을 자신의 첫 국무장관으로 임명하며 국정 동반자로 끌어안았다. 오바마는 “클린턴을 집권 전반기 첫 국무장관으로 둘 수 있었던 것은 내게 행운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의 후계자를 자처하고 다시 대선에 도전하는 클린턴을 지지했다. 두 사람은 오는 15일 대표적인 스윙스테이트(경합주)이자 러스트벨트(Rust Belt·쇠락한 공업지대)인 위스콘신을 시작으로 8년 만에 다시 공동 유세를 시작한다.

클린턴으로서는 천군만마를 얻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는 이메일 스캔들 수사로 궁지에 몰린 클린턴에게 든든한 보호막이 될 뿐 아니라 당의 단합을 가속화시키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클린턴은 지지선언 소식을 듣고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세상 모두를 얻은 것 같다”고 기뻐했다. 또 공영방송 NPR에 나와서는 “지지 소식에 황홀하다(thrilled)”면서 “우리는 여러 해를 거치는 동안 치열한 경쟁자에서 진정한 친구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동영상 공개 직전 샌더스를 백악관으로 불러 정권재창출에 뜻을 모으자고 설득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클린턴은 샌더스 의원이 주장한 임금 불균형 해소와 대학 학비 부담 완화, 부자세 신설 등 경제적 평등 추구 공약을 민주당 정강정책에 적극 반영하기로 뜻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샌더스는 오바마 대통령과 회동 직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조만간 클린턴을 만나 협력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며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클린턴 지지 의사를 밝혔다. 샌더스는 다만 14일로 예정된 워싱턴DC의 마지막 경선을 끝으로 전당대회 전에 후보직을 사퇴할 것으로 전해졌다.

클린턴과 트럼프의 지지율 격차는 3∼8% 포인트로 약간 벌어졌다. 폭스뉴스 여론조사는 클린턴 42% 트럼프 39%로, 로이터 통신 여론조사는 클린턴 42% 트럼프 34%로 각각 나타났다. 클린턴의 경선 승리 효과와 트럼프의 연방판사 인종차별 논란이 여론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월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