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어려운 일 당할 때’ 543장(통 342)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고린도후서 4장 7∼15절
말씀 : 본문에서 바울은 인간의 한계와 복음의 숭고함,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인간의 연약함을 시적인 표현으로 일치시키고 있습니다. 첫째, 보배를 담은 질그릇입니다(7).
세상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기 원합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 권력과 부, 지혜와 지식 등을 드러내기 원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 혹은 자신이 얼마나 지혜로운지를 증명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인간의 근원을 흙이라고 말합니다(창 3:19). 본문에서 질그릇은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바울은 이 질그릇이라는 말을 자신이 그동안 연약한 인간으로서 겪었던 수많은 고난과 환난을 대변하는 말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난과 환난으로 연약해진 육체와 같은 질그릇이 보배를 담고 있다고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4장 6절의 말씀과 문맥상으로 비교해 보면 이 보배는 복음을 의미합니다. 질그릇은 그릇 자체보다 그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집니다. 바울이 질그릇에 보배를 담았다고 표현한 것은 로마의 역사적 배경과 연관이 있습니다. 로마는 전쟁에서 승리하면 점령지에서 전리품으로 금화를 질그릇에 풍성히 담아 가져 왔습니다. 질그릇을 무사히 수송하기 위해 많은 로마 군인들이 필요했습니다. 질그릇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보배 때문에 군대를 동원해야 했습니다. 8∼10절은 복음을 담은 질그릇에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질그릇처럼 무가치하고 연약하지만 그 안에 담긴 복음으로 인해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당하지 않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으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않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둘째, 예수의 생명이 죽을 육체에 나타납니다. 빛과 어둠은 한곳에 동시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어둠에 빛이 들어오면 그곳은 빛으로 변합니다. 빛과 어둠이 하나 될 수 없듯이 생명과 죽음도 같은 공간과 같은 시점에 공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의 생명이 죽을 육체에 나타났다고 말합니다(10).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영원한 생명이 죽음 가운데 있는 우리의 육체 안으로 들어옵니다. 유대인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은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실 수 있으며, 절대선이신 하나님께서 죄악으로 가득한 인간의 심령 가운데 거하실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심판자와 죄인으로 철저히 나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인간과 하나님은 심판자와 죄인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됐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거하시면 죽음의 형벌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14∼15). 우리가 빛이신 예수님을 영접하면 죄악의 어둠은 물러가고 우리의 죽을 육체는 생명을 품게 됩니다.
기도 : 사랑의 하나님, 질그릇 같은 우리가 복음의 보배를 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지 않고 주님과 동행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이상윤 목사(한세대 외래교수)
[가정예배 365-6월 11일] 보배의 질그릇
입력 2016-06-10 1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