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는 우려는 선물, 관행, 떡값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뇌물이 사회에 끼친 해악을 망각한 것이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매년 발표하는 국가별 부패인식지수에서 10위권에 해당하는 세계 청렴 선진국들은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부패는 국가경제 파탄, 민주주의 파괴, 사회적 신뢰 붕괴, 대형 안전사고 발생, 전쟁의 패망을 초래하는 악의 근원이다. 경제 활성화를 이유로 비리 행위로 쉽게 발전할 수 있는 부패 환경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
유엔은 2003년 유엔 반부패협약을 만들어 국가별 이행 상황을 2∼3년마다 심사하고 있으며, 2010년 세계표준화기구(ISO)가 채택한 ISO 26000은 사회 조직의 투명성을 강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에서는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연방정부 47개 법률 중 12개가 최근 10년 사이에 제정됐고, 영국도 외국 공무원에 대한 뇌물 제공을 처벌하는 뇌물수수법(Bribery Act2010)을 제정했다. 금년 초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부패인식지수에서 우리나라는 100점 만점에 56점을 받아 OECD 34개 회원국 중 27위로 하위권을 기록했다. 부패인식지수는 결국 그 국가의 총체적인 부패문화의 수준이고 문화는 사회 구성원들의 중요한 행동양식이나 행동체계라고 본다면 우리나라의 청렴문화가 선진국 수준으로 진입하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부패문화는 오염된 공기와 같다. 오염된 공기가 서서히 인간을 죽이듯 부패문화는 개인과 국가를 병들게 하고 종국에는 파멸에 이르게 한다. 부패문화에서 청렴문화로 변화하는 속도가 현재로서는 매우 더디지만 미래에 반드시 성취해야 하는 우리의 최우선 과제다.
국가안보의 핵심으로 가장 자랑스러워해야 할 방위사업 분야가 최근 방산 비리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방위사업 혁신 초기 비리 제로화에 대한 자부심에 가득 차 주말도, 밤낮도 없이 헌신했던 노력이 무위로 돌아가고 국민들의 신뢰를 상실하게 된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국내외 반부패 전문가들과 함께 국제 콘퍼런스를 개최하고, 여러 가지 제도적 개선을 모색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청렴문화가 형성되지 않고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세계 최고 청렴 선진국인 덴마크의 정부와 국민 그리고 국민 상호 간 신뢰는 아주 높다. 신뢰는 청렴문화의 중심이다. 한순간이다. 국민과 정부와 방위사업 주체 간 신뢰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방위사업 혁신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무위로 돌아간다.
지난달 방위사업청과 국민권익위원회, 한국방위산업진흥회가 방산 청렴 생태계를 구축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방위사업 주체, 청렴의 정부 주체, 방산업체 대표가 함께 모여 처음으로 체결한 이 협약을 시작으로 청렴문화가 조성돼 선순환적 청렴 생태계가 구축되길 바란다. 호주 골프장에는 ‘어니스티 박스(honesty box)’라는 게 있다. 저녁시간에 골프장을 이용하는 고객이 자발적으로 사용료를 지불하는 상자다. 돈을 내지 않고 사용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지만 대부분 정직하게 돈을 내며 상자가 분실되는 경우도 10년에 한 번 정도라고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고용비용을 줄여 더 나은 곳에 투자할 수 있고 고객들은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투명성이 효율성을 높이는 지름길이다. 청렴문화가 기대되는 이유다.
이선희 한국투명성기구대표 전 방위사업청장
[기고- 이선희] 신뢰, 청렴 방위사업의 기초
입력 2016-06-10 18: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