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으로 보면 병참기지와 지휘부가 마련된 셈이다. 이제 자구안에 따른 효율적인 전투만 남았다.” 한 금융 당국 관계자는 8일 산업 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결정된 산업 구조조정 방안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국책은행을 위해 조성되는 최대 11조원 규모 자본확충펀드는 병참기지, 관계장관회의는 지휘부에 해당한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앞으로 2년을 한국경제 회생의 골든타임으로 생각하고 구조조정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하지만 이미 구조조정의 적기(適期)를 놓쳤고, 국민의 주머니를 축낸다는 지적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부실의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해 검찰 부패범죄특별수사단도 칼을 빼든 상황이다. 구조조정의 총지휘를 맡게 된 정부 감독기관이 안고 있는 세 가지 딜레마를 짚어봤다.
부실 조선사, 어디까지 살려야 하나
8일 발표된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방안은 감축을 통한 버티기에 방점을 찍었다.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3사는 인력을 30% 줄이고, 자산 매각 등을 통해 10조원을 마련하기로 했다. 정부와 채권은행단은 3년간 업황 불황이 이어져도 충분한 규모라는 평가다.
하지만 조선업 경쟁력을 장기적으로 어떻게 키울지에 대한 고민은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친환경 에코십 등 특수선박 부문 강화나 일반상선 분야 축소 등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는 것이다. 업계 공동 컨설팅이 진행 중이지만 결과는 7월 말이 돼야 나온다. 4조5000억원을 지원했던 STX조선해양이 법정관리에 돌입하면서 옥석 가리기가 실패했다는 지적도 거세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STX조선해양은 자금 지원보다 경쟁력 있는 부분을 살리고, 없는 부분을 줄이는 데 주력했다면 법정관리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영증권 엄경아 연구원은 “현재 상황에서 중소형 조선사를 계속 살려둘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경제에 미칠 파급효과를 고려하면 기업의 생사(生死)는 신중히 결정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구조조정의 철학은 최대한 기업을 살리는 데 있다”며 “결과만 놓고 재단하려 하면 아무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조정에 12조원 충분할까
국책은행에 투입키로 한 12조원에 대한 논란도 여전하다. 정부는 돈을 새로 찍는 게 아니라 있는 돈을 대출해주는 것인 만큼 발권력 동원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국은행의 대출 형식으로 리스크를 최소화했다는 설명이지만 야권과 금융노조 등을 중심으로 “나쁜 선례”라는 반발이 나온다.
기업은행 노조는 9일 “복잡한 다단계 구조 펀드의 결론은 한은 발권력과 기업은행을 재벌 구제금융으로 이용하겠다는 것”이라며 “산은·수은의 낮은 등급 채권을 매입하면 기업은행이 부실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은은 자본확충펀드에서 한은으로부터 대출받은 돈을 다시 펀드에 내놓는 역할을 한다.
대출금 회수가 어려워질 경우 최종 책임을 누가 지는지도 명확지 않다. 신용보증기금이 보증을 서지만 중소기업 지원이 목적인 신보가 조선·해운업 관련 자본 확충에 보증을 서는 게 적절한지 논란이 있다. 펀드 운영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 관계기관이 참여하는 운영위원회에서 맡기로 했지만 운영위 구성을 어떻게 할지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문제는 이런 논란을 무릅쓰고 출범한 펀드로 구조조정 재원이 충분한지 여부다. 오 교수는 “부실 여신을 매입해 정리하거나 구조조정 기업의 회사채로 인해 채권시장이 경색될 경우 더 많은 돈이 필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구조조정 감독기관 책임론 ‘불씨’
지원을 받는 산은과 수은은 인력감축 등이 불가피하게 됐다. 하지만 진행 과정에서 노조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 산은 노조 측에서는 감독기관인 정부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왜 우리만 고통을 감내해야 하느냐는 반발이 나온다. 정부로서는 국책은행 감독기관의 책임은 없느냐는 지적도 부담이다.
검찰 특별수사팀의 수사 방향도 관심거리다. 검찰은 대우조선해양의 경영진, 회계법인 책임론에서 출발해 국책은행의 유착 의혹까지 폭넓은 수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당시 산은 경영진도 수사선상에 오르게 됐지만 금융 당국 등 감독기관도 책임론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산은 당시 수뇌부에만 책임을 묻는 수사 결과가 나올 경우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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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긴 해야겠는데… ‘수술보다 연명 급급’ 논란
입력 2016-06-10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