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부장만 달아도 납품업체서 억대 챙겼다”… 결국 ‘공기업 갑질’ 수사

입력 2016-06-09 18:06 수정 2016-06-09 19:01

“대우조선해양을 비롯한 국내 굴지의 조선업계 원청회사 임직원들이 소위 ‘갑’의 지위를 이용해 다수 납품업체로부터 부정한 금품을 수수하는 고질적, 구조적 비리가 만연하다는 제보에 따라 수사가 진행됐다.”

부산고법은 2014년 대우조선 간부들의 배임수재 혐의를 인정, 유죄 판결을 내리며 이렇게 판시했다. 부산고법이 유죄 판결을 유지한 사례는 2014년에만 4건 있었다. 위기마다 국민의 돈을 쏟아부어준 대우조선이 몰두해온 것은 경영 정상화가 아닌 ‘갑질’과 뒷돈 챙기기였다. 오래도록 협력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아온 대우조선 간부들에 대해 재판부는 하나같이 “죄질이 가볍지 않다”고 판시했다.

법원에 따르면 최근 징역형을 선고받은 대우조선의 간부들은 갖은 명목과 방식으로 억대 금품을 수수했다. 해양플랜트 설계업무를 담당하며 자재 발주를 총괄한 정모(58) 전 상무는 “우리 회사의 케이블트레이가 납품되게 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납품업체 4곳으로부터 2009년부터 2013년까지 1억4768만원을 받았다. 명절과 여름휴가 때마다 은밀하게 상품권을 전달받거나 아내의 계좌로 현금을 송금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선박 설치 전장품의 설계업무를 맡은 박모(57) 전 이사도 이때 아내의 계좌 등으로 3200만원을 받아 재판에 넘겨졌고, 지난해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납품업체 관계자의 비밀장부에는 ‘박 리더’라는 기록과 금품의 액수가 적혀 있었다. 그는 뒷돈을 보낸 뒤 박 전 이사에게 “공이나 한 번 쳐라, 직원들과 회식이나 한번 하라”는 식으로 넌지시 신호를 보냈다고 진술했다.

선박 도장 공정을 관리하는 정모(56) 전 이사는 도장업체 9곳으로부터 납품 유지 및 검사 통과 청탁과 함께 2008년부터 2013년까지 1억4830만원을 수수했다. 설계자재 혁신파트에서 근무하던 조모(59) 전 부장도 수년간 1억6690만원의 뒷돈을 받았다. 뒷돈을 받은 대우조선 간부들은 외국산 제품을 고집하는 선주(船主)나 현장 담당자들을 직접 설득해줬다는 것이 공여자들의 진술이었다.

해양플랜트 사업 실패와 수조원대 손실 은폐의 이면에는 무너진 기업윤리가 있다는 지적이 크다. 공정거래를 버리고 협력업체와의 그릇된 공생에만 몰두한 대우조선은 그간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들의 수사선상에 올랐던 포스코·KT&G 등 ‘주인 잃은 공기업’들과 닮은꼴로 지목된다. 검찰 부패범죄특별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도 이번 대우조선 수사의 성격을 공기업 비리 수사로 규정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관련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