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출신 주권, 할머니의 나라서 드림投

입력 2016-06-10 04:20
kt 위즈 투수 주권이 4월 20일 수원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전에서 역투를 하고 있다. 조선족 출신으로 한국 프로야구 귀화선수 1호가 된 주권은 이제 팀의 에이스가 돼 ‘코리안 드림’을 이루고 있다. kt 위즈 제공

2005년 12월 8일. 한 조선족 모자가 한국으로 왔다. 중국에서 생계가 막막해 한국으로 온 어머니는 식당 허드렛일을 하며 아들을 보살폈다. 그리고 그 아들은 이제 한국 프로야구에서 에이스로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바로 kt 위즈 우완 주권(21)이다.

주권은 1995년 중국 지린성(吉林省)에서 태어났다. 생계가 막막해 할머니의 고향인 충북 청주로 어머니 전수빈씨와 단 둘이 왔다.

처음에는 한국말도 서툴렀고 야구는 듣지도 본 적도 없는 스포츠였다. 중국에서처럼 축구를 했다. 하지만 회비가 비싸 결국 축구를 그만뒀다. 말이 잘 통하지 않고, 하고 싶었던 축구도 못하니, 다니던 청주 우암초등학교에서 자연스럽게 외톨이가 됐다. 그 때 우암초 야구부 김정열 감독이 그를 눈여겨봤다. 다른 또래 아이들보다 체격도 컸고, 진중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결국 김 감독은 어머니를 설득해 야구를 시작했다. 야구가 축구보다 더 돈이 많이 드는 운동이었기에 어머니는 반대했다. 하지만 국적을 따지지 않고 다른 선수들과 잘 어울리는 아들의 모습에 승낙했다. 그렇게 어머니의 헌신적인 뒷바라지로 주권은 야구선수가 됐다.

그는 힘들 때마다 항상 어머니를 생각했다. 청주중, 청주고에서도 에이스로 이름을 날렸다. 청주고 3년 동안 통산 54경기 23승15패 평균자책점 2.25의 빼어난 피칭을 선보였다. 특히 묵직한 직구를 무기로 탈삼진을 잡아내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3년 간 296⅓이닝을 소화하며 282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

“어머니랑 저 둘이 살고 있었어요. 아버지는 중국에 계셔서 어머니가 더 힘드셨을 텐데 뒷바리지를 잘 해주셨습니다. 야구를 잘 해서 꼭 보답하고 싶었어요.” 2007년 중국 국적을 버리고 한국 국적을 갖게 된 주권은 그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바로 ‘코리안 특급’ 박찬호(43)였다. 무서운 강속구로 자신보다 덩치가 큰 선수를 압도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조선족 출신인 자신처럼 박찬호도 멀리 고향을 떠나 성공을 거두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주권은 “처음 야구를 시작했을 때부터 박찬호 선배를 동경했다. ‘나도 저렇게 뛰어난 투수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고 했다.

결국 주권은 2014년 6월 신생구단 kt 위즈로부터 우선 지명을 받았다. 계약금으로 3억원을 받았다. 한국 프로야구 귀화 1호 선수가 탄생한 것이다. 당시 그는 “가슴이 벅차다. 힘들게 키워주신 어머니를 위해 더 크게 성공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프로의 벽은 녹록치 않았다. 너무 잘 던지려고 무리하다 지난해 초 스프링캠프에서 어깨 부상을 당했다. 결국 지난해 15경기에 나와 승리 없이 2패, 평균자책점 8.51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그래도 조 감독과 정명원 투수코치의 믿음은 변함없었다. 부상에서 완쾌된 후에도 그에게 계속 기회를 줬다. 교체 타이밍에도 좋은 경험을 쌓으라는 뜻에서 시기를 늦추기도 했다.

주권은 이런 믿음에 보답했다. 주권은 27일 수원 넥센 히어로즈전에 선발 등판했다. 앞선 6번의 선발 등판에서 가장 길게 던진 이닝이 5⅓이닝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계속해서 넥센 타자들을 요리했다. 9이닝을 무실점으로 지키고 완봉승을 거뒀다. 공 104개를 던지면서 사사구 하나 없이 4안타만 내주고 삼진 5개를 빼앗는 완벽투였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데뷔 첫 승을 무사사구 완봉승으로 따낸 것은 주권이 사상 처음이다. 특히 자신의 프로 데뷔 첫 승이자 지난해 1군 무대를 밟은 kt 구단 최초 완봉승 기록이어서 기쁨이 더했다. 코리안 드림이 이뤄진 순간이었다.

그리고 지난 8일 선두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 또다시 선발 등판했다. 경기를 앞두고 kt 더그아웃은 적막감이 감돌았다. 이날 경기에서 지고, 한화 이글스가 승리를 거두면 kt는 꼴찌로 추락하게 되는 위기감이 엄습했다. 하지만 주권은 막강 두산 타선을 6이닝 동안 4피안타 1볼넷 2탈삼진 2실점으로 틀어막았다. 팀이 5대 4로 승리하면서 kt는 오히려 순위가 9위에서 8위로 올라갔다. 주권은 “어머니 뒷바라지에 조금이나마 보답한 것 같아 기쁘다”며 “앞으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던지겠다”고 말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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