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종영된 드라마 ‘리멤버-아들의 전쟁’에는 온갖 갑질을 하는 안하무인 재벌 2세가 나온다. 사소한 일에도 참지 못하고 화를 낸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 광기 어린 모습으로 집기를 부수고 부하직원을 폭행하는 것은 예사다.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른다. 흥분하면 자기통제가 안 되는 분노조절장애다. 그래서 그 재벌 2세는 ‘분노조절장애 찌질이’란 말까지 듣게 된다.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갑의 횡포가 한국사회에 만연해 있다. 으뜸은 재벌 2, 3세의 갑질이다. 이들 역시 분노조절을 못한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이 대표적이다. 그 후에도 잊을 만하면 터져 나왔다. 운전기사를 상습 폭행한 김만식 몽고식품 전 명예회장, 사이드미러를 접고 운전케 한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 경비원을 폭행한 정우현 MPK그룹 회장, ‘운전기사 갑질 매뉴얼’로 유명해진 정일선 현대BNG스틸 사장…. 공분을 불러일으킨 사건들이다. 오죽하면 지난 4월 시민단체 차원에서 ‘24시간 갑질 피해 신고 콜센터’ 운영에 나섰겠는가.
대기업·공기업 갑질도 심각하다. 이른바 ‘밀어내기’로 대리점주에게 제품을 강매한 남양유업 사태는 고질적 갑을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홈플러스·이마트·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3사의 납품업체 횡포, 서울메트로와 같은 공기업들의 협력업체 갑질 관행은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이젠 고수익 화이트칼라 계층인 의사들의 황당한 갑질이 화제다. 경찰이 7일 발표한 제약업체 리베이트 사건에 연루된 의사 상당수가 제약사 영업사원들을 노예나 머슴처럼 부려먹었다고 한다. 의약품 채택 등을 대가로 금품을 받은 것은 물론 의사 자신의 허드렛일까지 하게 했다. 빵 배달, 자녀 등하교 픽업, 가족 생일선물 챙기기, 휴대전화 개통, 컴퓨터 수리, 형광등 갈아주기, 수도꼭지 고치기, 어항 청소 등등. 이게 ‘감성영업’이란다. 참 뻔뻔한 의사들이다. 영화 ‘베테랑’의 유아독존 재벌 3세 조태오의 대사가 생각난다. “어이가 없네.”
박정태 논설위원
[한마당-박정태] 갑질 백태… 현대판 노예까지
입력 2016-06-09 1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