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4일 밤 9시쯤 서울시 출입기자들에게 긴급 기자회견을 알리는 문자가 발송됐다. 기자들은 중대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직감에 늦은 밤이었지만 허겁지겁 시청 기자실로 몰려들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밤 10시40분 초유의 심야 기자회견에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에 감염된 서울의 유명 종합병원 의사가 1500여명이 모이는 대규모 행사에 참석해 불특정 다수와 접촉했다”는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결과적으로 그 의사가 참석한 행사에서는 메르스 전염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가 쉬쉬하고 있을 때 박 시장은 시민 안전을 위해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시민들과 위험한 상황을 공유해 지지를 받았다.
2016년 2월 21일 일요일 오전 8시쯤 서울시 출입기자들에게 또다시 갑작스러운 기자회견 예고 문자가 날아들었다. 22일 0시부터 내부순환로 정릉천 고가도로를 전면 통제한다는 발표였다. 월요일 출근길 대란이 예상된다며 여론이 들끓었지만 안전점검 중 중대 결함이 발견돼 시민 안전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박 시장은 타협하지 않았다. 초기에는 불편에 따른 부정적 여론이 많았으나 점차 시민들은 적응해갔다. 결국 안전을 위해서라면 불편을 감수하겠다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돋보였다.
2016년 5월 28일 토요일 오후 6시쯤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작업하던 김모(19)씨가 전동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서울시의 안전 대응체계가 작동하지 않았다. 서울메트로는 사고 원인을 김씨에게 돌리며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했고 박 시장은 사흘이 지난 뒤에야 사고 현장을 찾았다.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판단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청년’ ‘비정규직’ ‘안전’ 등 박 시장이 평소 강조했던 핵심 가치들이 무너져내린 사건이기에 더욱 뼈아픈 실책이었다.
안전사고는 99번 잘 대응해도 한 번 실수하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다. 박 시장도 그동안 안전사고에 기민하게 대처해 위기관리 리더십을 보였지만 구의역 사고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지난해 8월 강남역에서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가 났을 때 내놓은 자회사 설립이나 2인1조 매뉴얼은 탁상공론에 불과했다. 박 시장은 ‘현장에 답이 있다’고 수없이 되뇌었지만 그 철학이 조직에 스며들지 못했다.
다음 달이면 박 시장은 민선 6기 취임 2주년을 맞는다. 2011년 보궐선거로 서울시장에 오른 뒤 재선에 성공하면서 5년간 숨가쁘게 달려왔지만 최근 리더십의 위기를 맞고 있다. 본격적인 대권 경쟁에 뛰어들기에는 서울시민의 삶이 아직 팍팍하고 상황이 녹록지 않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최근 귀국해 대권 도전을 시사하고 야권 잠룡들이 기지개를 켜고 있지만 조급해할 필요 없다. 서울시장으로서 시정에 전념하고 그 결과 시민들의 삶이 안전하고 편안해진다면 대권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해도 민심은 그를 부를 것이다.
위기는 기회다. 박 시장이 이번 사고로 사면초가에 몰렸지만 성난 여론은 ‘메피아’(서울메트로+마피아)를 척결하고 서울시 안전의 기틀을 놓을 수 있는 모멘텀이 될 수 있다. 첫 번째 시험대는 신임 메트로 사장 임명이다. 인선 절차가 진행 중인데 일각의 우려대로 철도 비전문가를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발탁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대권을 위한 자기사람 심기’라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다시 신발끈을 동여매고 ‘시민의 꿈을 지키고 이뤄가는 시장이 되겠다’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김재중 사회2부 차장 jjkim@kmib.co.kr
[세상만사-김재중] 위기는 기회다
입력 2016-06-09 1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