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회계법인·당국… 부실의 ‘삼각 커넥션’ 파헤친다

입력 2016-06-09 04:42
검찰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이 8일 전격 압수수색을 단행한 서울 중구 대우조선해양 건물 로비를 회사 직원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다. 구성찬 기자
검찰 부패범죄특별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이 대우조선해양 수사를 통해 따져 물으려는 것은 혈세로 회생한 대기업의 방만 경영, 그를 감독한 국책은행과 회계법인, 금융당국의 책임이다.

대우조선의 분식회계 의혹은 지난해 갑작스러운 수조원대 영업 손실 발표로부터 연이어진 산업은행과 금융감독원의 조사, 회계법인의 오류 인정 등을 거치면서 꾸준히 제기됐다. 특별수사단도 대우조선 경영진의 비리 등 전반적인 문제점을 수집·분석해 왔다. 특별수사단은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남상태·고재호 사장의 재임 9년을 범죄의 재구성 기간으로 잡았다고 8일 밝혔다. 이 기간 부실 경영과 분식회계의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대우조선해양의 감독 주체들은 “몰랐다”는 반응만 되풀이했다.

들끓는 분식회계 논란, 그저 ‘몰랐다’는 산업은행

대우조선의 분식회계 의혹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계기는 지난해 7월 29일의 잠정공시였다. 이날 대우조선은 “2분기 영업손실이 3조318억원”이라는 잠정 재무제표를 투자자들에게 내보였다. 직전까지 ‘조선 빅3’ 가운데 유일하게 수주목표를 초과하며 승승장구하던 대우조선이었다. 해양플랜트(석유·가스 등 해양자원 개발 설비 제조업) 부문에서 발생한 손실을 한꺼번에 반영했다는 설명이 이어졌지만, 우량 상장사의 갑작스러운 적자 소식에 시장의 충격은 컸다.

정확한 부실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비판의 화살은 대우조선 수뇌부를 떠나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에까지 향했다. 지난해 9월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책은행 국정감사에서는 6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대우조선의 부실을 산업은행이 몰랐을 리 없다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하지만 홍기택 당시 산은 회장은 “대우조선의 부실 사항을 우리가 파악하고 있었으면 그것은 법 위반”이라며 “내가 오기 전에 일어난 상황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보고받은 바가 없다”고 했다.

9000억원 이익이 하루아침에 1조5000억원 손실로

조선업계 부실 사태에 산업은행의 실사 착수, 금융감독원의 감리 착수, 소액주주들의 분식회계 손해배상 소송이 이어졌다. 더욱 충격적인 사건은 올 들어 발생했다. 지난 4월 14일 금융감독원 공시시스템에는 ‘회계 추정 오류’라며 2013년과 2014년 2개 회계연도에 대한 대우조선의 사업보고서가 대폭 정정돼 올라왔다. 4242억원이라던 2013년의 영업이익은 7898억원의 영업손실로, 4543억원으로 투자자에게 알려졌던 2014년의 영업이익은 7545억원의 영업손실로 정정됐다.

무려 2조4000억원이 넘는 손실이 뒤늦게야 반영된 사건이었다. 대우조선의 회계 외부감사를 맡은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이 지난 3월 대우조선의 부실을 뒤늦게 확인, 정정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앞선 2013년과 2014년에는 손실을 잡아내지 못하고 ‘적정’ 의견을 표명했던 안진회계법인이었다. 회사의 부실 은폐에 대한 관심이 재점화됐고, 회계법인에 대한 비판론도 확산됐다. 안진회계법인은 직후 금융감독원에 소명 자료를 제출한 상태라고 밝혔다.

고의로 숨겼나, 조력자는 없나

대우조선의 거액 영업손실 발표 이후 시장의 관측은 단순한 어닝쇼크(예상을 크게 밑도는 실적)가 아닌 경영 비리라는 것이었다. 지난해 연임을 노리던 고재호 사장이 실적을 내세우기 위해 유·무형의 손실을 덮어버렸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소액주주들의 소송이 줄을 잇는 가운데 대우조선해양 감사위원회가 남상태·고재호 사장을 수사해 달라며 검찰에 진정을 넣기도 했다.

‘최고 사정기관’의 수사는 단순한 경영 비리를 넘어 대우조선의 부실 경영을 방조한 정·관계로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부행장 출신들을 줄줄이 대우조선 자금 담당 임원으로 내려 보냈으면서도 사태를 몰랐다던 산업은행, 뒤늦게야 손실을 발견한 안진회계법인, 산업은행을 관리·감독한 금융당국, 공적자금 투입을 결정한 정책당국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들은 대우조선이 정확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항변하지만,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평가다.

이날 산업은행의 경우 수석부행장실, 구조조정 담당 부행장실이 서류와 이메일의 압수수색 대상처가 됐다. 영장에는 “대우조선 분식회계 및 경영진 비리 관련”이라고 적혀 있었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의 양이나 범위가 방대하다”며 “압수물 분석에만 최소 1주일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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