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아주 낯선 선택]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영남 민주화’에 달려 있다”

입력 2016-06-09 19:40 수정 2016-06-09 22:23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오른쪽)와 김홍걸 더민주 국민통합위원장이 총선 직전인 지난 달 4월 8일 광주광역시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무릎 꿇고 묵념하는 장면. 문 전 대표가 지난 총선에서 분명하게 확인된 ‘호남의 벽’을 어떻게 넘어설지가 내년 대선의 관건이 됐다. 국민일보DB
지난 4·13 총선에서 호남은 국민의당에 몰표를 던졌다. 더민주 전패. 사상 초유의 일이었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호남의 이런 아주 낯선 선택을 선거 전에 논의한 책이 있긴 했다. 김욱 서남대 교수(헌법학)가 지난해 12월 출간한 ‘아주 낯선 상식’(개마고원)이다.

김욱은 이 책에서 호남 민심이 왜 더민주, 특히 문재인 중심의 ‘친노’ 세력과 결별하게 됐는지, 그리고 결별해야 하는지를 논쟁적인 필치로 기술했다.

저자는 한국을 영남패권주의 사회로 규정하고,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이후의 호남 민심과 역사를 반영남패권주의로 파악한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친노 세력이 영남패권주의에 투항해버린 게 호남 민심이 동요하는 이유라고 분석하면서, 그들이 주장하는 ‘호남(이라는 지역 관념) 없는 개혁’이라는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비판했다.

이번에 새로 나온 ‘아주 낯선 선택’은 전작이 불러일으킨 논쟁들에 답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보다 구체화한 속편으로 보인다. 김욱은 이번 책에서 “지역주의는 다 나빠” 식의 ‘지역주의 양비론’이 실은 영남패권주의에 투항하는 이데올로기이며, 호남 지역주의의 역사와 진보성을 무시하는 논리라는 것을 설득하는데 온 힘을 기울인다. 그가 노무현과 친노를 그토록 집요하게 비판하는 이유도 그들이 민주적인 호남 지역주의를 반민주적인 영남 지역주의와 동일하게 취급했으며, 반영남패권주의라는 호남의 이데올로기를 ‘지역주의 해체’라는 명분 아래 포기해버렸다는 데 있다.

더민주를 비롯한 개혁·진보세력은 영남패권주의와 싸울 생각도 없으면서 이번 총선 과정에서 호남의 몰표를 요구했고, 호남이 표를 주지 않자 “분열” “역사의 죄” “호남 고립” 등등의 말을 써가며 호남인들의 선택을 비난하고 겁박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저자는 호남의 선택을 적극 옹호한다.

“만약 새누리당 해체라는 최대강령을 포기했다면 어떻게 정치를 해야 하는가? ‘선’을 위한 호남몰표를 주장하지 말고 호남유권자 앞에서 평등하게 표를 받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들은 호남이 생각이 다르면 다른 대로, 그 다른 생각을 인정하며 민주주의를 위한 공평한 연대의 대상으로 볼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김욱은 여기서 한국 민주화세력, 또는 진보·개혁세력의 논리적 오류와 정신적 분열증을 인정사정없이 질타한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싸가지 없는 진보’는 차라리 점잖은 편이다. 그는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정치인, 언론인, 논객들을 실명으로 불러내 반론을 펼치면서 한국 민주화 이데올로기에 숨겨진 중대한 허점을 드러내 보인다. 영남패권주의 문제를 외면하고 호남 지역주의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호남 없는 개혁’ 이데올로기가 전작에서 파헤친 주제라면, 새 책에서는 영남에게 민주화의 책임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영남 없는 민주화’ 이데올로기를 문제 삼는다.

“대한민국의 민주화가 ‘호남몰표’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생각이 꽉 차 있다. 틀렸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호남몰표’가 아닌 ‘영남분열’에 달려 있다… 영남의 민주화 없이 호남몰표만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나는 ‘영남 없는 민주화’ 이데올로기라고 부른다.”

호남의 지역주의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것과 영남의 민주화가 문제라는 저자의 주장은 향후 한국 민주주의를 재구성하는 데 의미 있는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아직 민주화되지 못한 영남을 어떻게 민주화시킬 것인지, 즉 그들의 새누리당으로의 결집을 어떻게 저지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지 영남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 특히 호남의 일당독재체제를 어떻게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