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부실 책임을 물어 국책은행에 대한 강도 높은 쇄신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그러나 물밑에서 결정은 정부가 하고, 시키는 대로 한 죄밖에 없는 국책은행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조조정 컨트롤타워 격으로 신설한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 역시 전형적인 뒷북 행정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국민 혈세 투입, 책임 없다는 정부
정부는 8일 구조조정 시행 과정에서 부실 우려가 커진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최대 12조원을 지원하면서 두 은행의 자구노력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웠다. 정부는 구체적으로 두 은행에 성과연봉제를 확대 도입하고, 전 직원의 올해 임금상승분을 반납키로 했다. 중장기적으로는 인력을 5∼10% 줄이고 구조조정 유관 기업의 취업을 원천적으로 금지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정작 두 국책은행의 최대주주인 정부는 책임론에서 한 발 빠져 있다. 두 은행 부실화의 직접적 원인이 된 지난해 10월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4조2000억원 지원 결정에 대해 정부는 국책은행과 긴밀히 상의한 결과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당시 산업은행장이었던 홍기택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행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청와대 서별관회의(비공개 경제금융점검회의)에서 아예 산업은행 얼마, 수출입은행 얼마 하는 것까지 딱 정해져서 왔다”며 “(정부는) 모든 사안에 관여하면서도 방식은 말로 지시했고, 이를 따르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는 압력을 행사했다”고 폭로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도 “문제가 된 국책은행 자회사 ‘낙하산’도 정부와 정치권의 몫이 더 많았다”면서 “‘잘되면 정부 몫, 실패하면 국책은행 탓’이 공식화된 것 같다”고 꼬집었다.
컨트롤타워 만들면서 서별관회의는 그대로?
정부는 원칙적으로 구조조정 과정에서 책임질 사안이 있으면 책임지겠다는 입장이지만 실제로는 ‘꼬리 자르기’ 식 행태를 보이고 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공식 브리핑에서 ‘자본확충펀드 11조원 회수에 대한 최종 책임은 정부가 질 것인가’라는 질문에 “정부가 (국책은행과 함께) 회수 노력을 같이 한다는 뜻”이라고 에둘러 답했다.
구조조정 컨트롤타워 격으로 신설된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 역시 옥상옥(屋上屋)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정부는 비공식적인 컨트롤타워였던 서별관회의를 없애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앞으로도) 서별관이든 어디든 의견을 교환하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임 위원장은 “미국은 구조조정에 관여한 사람은 면책하는 법을 만들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신설된 컨트롤타워가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의 쓴소리 이후 급조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윤 전 장관은 지난 3일 한국은행 직원 대상 특강에서 “구조조정의 순서가 잘못됐다. 밑그림이 먼저 나와야 하는데 지금은 금융위원장이 다 뒤집어쓴 꼴”이라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나성원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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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시는 정부가… 실패 책임은 국책은행만?
입력 2016-06-09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