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적 약세 절감… ‘알짜 상임위라도 챙기기’ 급선회

입력 2016-06-09 04:47
새누리당의 국회의장직 양보에는 더 이상 20대 국회 원(院) 구성 협상을 지연시킬 수 없다는 현실론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수적 우위를 앞세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압박 수위가 높아지자 새누리당이 ‘알짜 상임위’를 가져가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는 것이다. 한동안 제자리만 맴돌던 원 구성 협상이 물꼬를 트게 된 모양새다.

與, ‘알짜 상임위’ 사수로 방향 전환

새누리당은 의장직을 내주는 대신 법제사법위·운영위원장을 사수하겠다는 입장이다. 국회의장을 야당이 차지하게 된 만큼 법안 처리의 ‘마지막 관문’인 법사위원장은 당연히 여당 몫으로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 청와대 비서실 등을 소관기관으로 하는 운영위에 대해선 협상 초반부터 사수 의지가 확고했다. 대여(對與) 공세 수단으로 활용될 소지를 차단하겠다는 의미에서다.

다만 새누리당은 예산결산특위·기재위·정무위 등 경제 관련 상임위 중 한 곳을 야당에 넘겨줄 수 있다고 했다.

의장직 양보 명분은 총선 민의와 파국으로 치닫는 협상 상황이었다. 새누리당 유력 의장 후보였던 서청원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내가 욕심을 갖고 있다면 선배의 도리가 아니다”며 “혹시 의원총회에서 (의장직 양보가) 논란이 되면 직접 나서서 정리할 것”이라고 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8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집권여당으로서 국회의장을 맡아 책임 있는 정치를 구현하는 게 오랜 기간 확립된 국회의 관례”라면서도 “여소야대라는 4·13총선 민의를 받들고 존중하기 위해서는 어느 쪽이 먼저 내려놓지 않으면 출구를 마련할 수 없다”고 했다. 청와대와 원 구성 협상에 대해 의견을 나눴느냐는 질문엔 “청와대와 이 문제를 긴밀하게 협의한 바도 없고 어떤 주문을 받은 바도 없다”고 했다.

다만 친박(친박근혜) 일각에서는 “협상 동력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하는데 마지막 카드를 너무 쉽게 꺼내 보였다”는 등 정 원내대표에 대한 불만도 터져 나왔다.

‘허 찌른 양보’에 셈법 복잡한 더민주

더민주는 새누리당의 의장직 양보 제안을 수용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4선 이상 중진의원들과 긴급 회동을 갖고 새누리당 제안과 상임위원장 배분 문제 등을 논의, 협상 전권을 위임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완주 원내수석부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의장 문제가 해결됐기 때문에 상임위 배정 문제로 판이 깨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더민주가 ‘경제 상임위+α’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협상이 난항을 겪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새누리당은 경제 관련 상임위 중 한 곳만 야당에 넘겨줄 수 있다고 마지노선을 설정한 상황이다.

우 원내대표와 중진의원 회동에선 “의장 자리와 운영위원장을 같이 가져와야지 어떻게 하나만 가져오느냐”는 의견도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더민주 관계자는 “어떤 상임위를 가져와야겠다는 게 정해졌다기보다는 열려 있는 상황”이라며 “일단 우리가 법사위를 양보했으니 다른 부분은 협상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더민주로선 새누리당이 양보하는 모습을 먼저 연출한 만큼 향후 협상에서 목소리를 마냥 키울 경우 역풍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로선 원 구성 쟁점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아 상임위원장 선출 법정시한인 9일까지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은 떨어진다.

김경택 최승욱 기자 pty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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