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라동철] ‘구의역 참사’의 경고

입력 2016-06-08 19:39

박원순 서울시장이 7일 기자회견에서 “시민 안전을 위협하는 특권과 관행을 반드시 뿌리 뽑겠다”고 천명했다. 지난달 28일 발생한 구의역 스크린도어 작업자 사망 사고와 관련, 대책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서울메트로 측은 사고 초기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사고’라며 작업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다 공분을 샀다. 그러나 이 사고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9세 청년에게 책임을 돌릴 일이 아니라는 게 속속 드러났다. 작업 인력이 부족하고 시간에 쫓겨 안전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될 수 없었던 현장, 위험이 도사리는 환경 속에 내던져져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고된 노동을 이어가던 청년의 삶이 꺾인 이면에는 검은 착취 구조가 도사리고 있었다.

2013년 1월 성수역에서, 2015년 8월 강남역에서도 같은 사고가 있었다. 지난해 사고 후 서울시와 서울메트로가 내놓은 2인1조 근무 시스템, 용역업체의 자회사 전환 추진 등의 대책을 비웃듯 사고는 재발했다. 안전수칙과 매뉴얼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박 시장이 자인했듯 ‘책상머리 대책’이었고 ‘소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못한 사고’였다. 서울시는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통감한 듯 사태 수습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서울시 교통본부장을 경질하고, 서울메트로 본부장 2명과 감사의 사표를 수리했다. 구의역장 등 5명은 직위해제했다. 박 시장은 자체 감사는 물론 민관합동 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 사고 경위 및 원인을 철저히 가려내 책임이 드러나는 사람에게는 책임을 묻겠다고 공언했다. 불공정 관행이 만연된 하청 구조 개선, 시민의 생명·안전과 직결되는 외주 업무 직영 추진, 작업 조건과 보상체계 개선, 전관 채용 관행 근절, 퇴직자·신규채용자 간 불합리한 차등 보수 체계 전면 수정 등도 약속했다.

박 시장은 대중교통 안전관리를 비용 절감과 경영 효율의 관점에서만 보지 않고 ‘돈보다 사람을 중시하는 일자리’로 바꿔가겠다고 밝혔다. 약속은 장황하지만 전례가 있어 선뜻 믿음이 가지는 않는다. 서울시는 이번 사태를 절체절명의 위기로 여기고 철저한 진상규명과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 이번에도 ‘책상머리 대책’에 그쳐서는 안 된다. 각고의 노력으로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시민들의 신뢰를 되찾을 수 없다.

서울시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지만 정부나 정치권 등 다른 주체들도 이 사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구의역 참사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가 응축된 ‘사건’이기 때문이다.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하청·재하청으로 이어지며 약자에게 ‘갑질’을 일삼는 착취의 먹이사슬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작동되고 있다. 먹이사슬 말단의 한쪽에는 구의역 사고 희생 청년과 같은 비정규직·하청 노동자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위험과 빈곤, 과로가 일상인 환경에 무방비로 놓여 있다. 이런 점에서 구의역 참사는 불의의 사고가 아니라 사회적 살인이다. 좋은 일자리는 점점 줄고 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거나 운이 좋거나 능력이 출중한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는 그림의 떡이다. 대기업, 중소기업 간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이런 불균형 사회를 바꾸지 않으면 구의역 참사는 언제 어디서든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하청업체의 안전사고를 줄이려면 원청업체에도 공동으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안전·생명과 직결된 업무의 외주는 제한해야 한다. 경제적 과실을 공평하게 나누고 최저임금 인상, 일자리 나누기 등을 통해 나쁜 일자리를 줄여나가는 쪽으로 사회적 공감대를 모을 필요가 있다. 구의역 참사는 상생경제를 외면하면서 착취 구조를 확대재생산해 가는 우리 사회에 던지는 경고다.

라동철 사회2부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