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그리스도인의 행복조건

입력 2016-06-08 20:27

그리스도인의 표현 중에 ‘믿음’ ‘성령 충만’ ‘하나님의 뜻’ 같은 단어들은 너무나 추상적입니다. 믿음을 말하면서 믿음이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거나 그 고백대로 행동하지 못합니다. 성령 충만을 말하면서도 정작 성령 충만의 상태가 어떤 건지 이해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운운하지만 그 뜻이 무엇인지 몰라 뜬구름을 잡을 때도 종종 있습니다. 아마 ‘행복’도 그런 단어들 중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행복이라는 단어에서 ‘행’은 ‘바라다’ ‘희망하다’ 등으로, ‘복’은 ‘돕다’ ‘내리다’로 해석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행복’은 ‘바라거나 희망하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내리거나 주는 것’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행복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라는 겁니다. 은혜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듯 행복 역시 그분이 주시는 특별한 선물입니다. 사전에서 행복을 ‘욕구가 충족돼 충분한 기쁨과 만족을 느끼는 상태’라 정의한 것은 어쩌면 하나님께 특별한 선물을 받았으니 당연히 기쁨과 만족을 누릴 수밖에 없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원합니다. 바라는 소원을 이루고 기쁨과 만족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누가복음에서 저자는 네 가지 행복 조건을 제시합니다. 첫째는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날에)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20절)’입니다. 둘째는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그날에) 너희가 배부를 것이다’이며 셋째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날에) 너희가 웃을 것이다’입니다(21절). 마지막은 ‘인자로 말미암아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하여 버릴 때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22절)’입니다.

마태복음에 열거된 여덟 가지 복이 유대인의 율법적 정서에 맞춰 기록된 행복의 조건이라 한다면, 누가복음의 네 가지 복은 황제 숭배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제국 시민의 모든 자격을 박탈당한 채 핍박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선포된 조건입니다. 이렇게 볼 때 행복의 가치는 분명히 달라집니다. 물론 마태복음의 여덟 가지 복도 로마의 식민 지배와 헤롯 왕가, 전통 종교지도자 등 삼중 착취 구조 속에 허덕이던 팔레스타인의 사람들에게 전해진 희망의 복음입니다. 하지만 누가복음의 행복 조건은 경제적 굶주림이나 사회적 착취를 뛰어넘어 목숨을 담보로 그리스도인 ‘데오빌로 각하’에게 전하는 행복의 조건이기에 더 의미가 다가옵니다.

누가가 말하고자 했던 그리스도인의 행복 조건은 결국 ‘지금의 고난이 그날의 보상’이란 것입니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을 지킨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행복이라는 겁니다. 마음먹은 대로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주어진 환경을 회피하거나 미화하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그리스도인이 되길 원한다면 주어진 현재의 환경을 회피해서는 안 됩니다. 피하는 것이 절대 상책은 아닙니다. 주어진 환경에 맞서 끝까지 인내하고 극복할 때 그날에 분명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강종권 사관 (구세군부천교회)

약력=△구세군역사박물관장 역임 △현 구세군사관대학원대 교수, 구세군역사연구소 연구위원, 한국기독교역사문학학회장, 숭실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