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춘희 <9> 금식기도 응답 받고 마침내 ‘최고령 사시 합격’

입력 2016-06-08 20:29
박춘희 서울 송파구청장이 2014년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유세를 하고 있다. 그는 2010년에 이어 민선6기 재선에 성공했다. 송파구청 제공

“하나님 제가 사법시험 공부를 계속해도 되겠습니까. 아니면 그만할까요. 그만두면 제3의 길을 알려주세요.” 경기도 청평 강남금식기도원에서 이 문제를 놓고 집중 기도했다. 하나님은 3일 금식기도를 더해 7일째 새벽기도에서 환상을 보여주셨다.

눈앞에 빨간색 스탠드가 확 지나가는 게 아닌가. 나는 이 빨간색 스탠드를 켜놓고 매일 공부했다. 7일 금식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분명한 응답이었다. 다시 3박자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그해 1차 시험은 떨어졌고 잠깐 실망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하나님은 계속 공부를 하라고 했지, 올해 합격 시켜주신다고 응답한 적은 없으셨기 때문이다.

나는 1차만 세 번 합격했다. 2차는 6번 만에 통과했다. 최종 합격자를 발표할 때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드렸다. “이왕 합격시켜주실 거면, 가장 좋은 방법으로 알려주세요.”

보통 사법시험 최종 합격은 오후 5시쯤 알 수 있다. 3시쯤 휴대전화가 울렸다. 신문사 기자라고 밝힌 그는 “박춘희씨가 최고령으로 합격했다”며 소감을 물어왔다. ‘2002년 44회 사법시험 최고령 합격자, 48세 박춘희.’ 그게 나였다. 10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하나님은 가장 좋은 방법으로 기쁜 소식을 알려주셨다.

변호사 일은 오빠와 선배가 함께 운영하던 사무실에서 시작했다. 나는 사법시험 공부를 오래한 것에 비해 변호사로 활동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5년 정도 일했으니 말이다. 국선변호를 많이 했고 여러 지역을 다니며 무료법률 상담을 했다. 그러다 2010년 6·2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지방선거 클린공천감시단’ 위원에 위촉됐다. 위원장은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이었고, 위원 대부분은 변호사들이었다. 회의 때마다 서울 송파구가 화제였다. 대부분 지역에서 후보를 냈는데, 송파구만 늦어진다는 것이었다. 여성전략공천지역으로 선정돼 여성 후보를 찾는데 난항이라는 것이었다.

어느 날 심 위원장이 “박 변호사는 집이 어디요”라고 물었다. “우리 집이 송파 아닙니까”라고 별 생각 없이 답했다. 그러자 심 위원장은 책상을 치며 말했다. “박 변호사가 송파구청장 나가면 되겠네.” 당연히 농담으로 넘겼다. 심 위원장은 이후로도 몇 차례 송파구청장 후보를 제안했다.

선거는 얼마 남지 않았고 송파구에선 여전히 여성 후보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심 위원장은 작심한 듯 당시 인재영입위원장인 남경필 현 경기도 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기 송파에 사는 여 변호사가 있으니 한 번 만나보시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내일 아침 7시까지 한나라당 당사로 꼭 가보라고 당부했다.

일단은 알겠다고 답했지만 이튿날 잠에서 깨어보니 오전 8시였다. 의뢰인과 10시에 약속도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사무실로 가는데 의뢰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급한 일이 생겨 날짜를 미뤘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약속도 취소됐고 사무실에 가야 할 일도 없어 생각난 김에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로 향했다. 도착 시간은 오전 11시. 휴식 중이던 공천심사위원들을 만났고, 급한 대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사법시험 9전10기’ 열매에 이어 또 다른 나의 도전이 그렇게 불쑥 찾아왔다.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