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울산 지역 한 조선소에서는 거센 비바람 속에서 야간작업을 하던 하도급 노동자가 절벽 아래 바다로 추락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선박 블록을 옮기는 운반 차량(트랜스포터) 앞에서 뒷걸음질을 치며 신호수 역할을 했었다. 조명은 어두웠고, 현장에 안전장치나 구명기구는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건 이후 노동자들 반응은 두 가지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밤에 비바람이 그렇게 거센데 옥외 야간작업을 하는가. 작업을 중지해야 했다”고 했다. 반면 하도급 노동자들은 “위험을 모르지 않는다. 작업을 못 한다고 하면 바로 잘리는데 시키는 대로 해야지 어쩌겠는가”는 반응이었다.
“하도급 노동자, 물리적으로 38% 더 위험”
이는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말 ‘사내하도급과 산업안전’ 연구보고서를 통해 전한 하도급 노동자의 비극적 실태다. 원청업체의 공기단축 요구, 관리 공백, 열악한 처우와 잦은 이직에 따른 숙련도 부족, 작업중지권 부재 등이 하도급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원인으로 제시됐다. 서울 구의역 스크린도어 작업자 사망 사고, 남양주 지하철 공사현장 붕괴 사고가 발생하기 전부터 하도급 노동자들이 처한 위험을 지적하는 경고가 컸던 셈이다.
연구원은 하도급 노동자들이 얼마나 큰 산업재해의 위험에 처해 있는지 수치로 분석했다. 진동·소음·분진·화학물질 등 물리적 위험의 경우 하도급 노동자들이 하도급이 아닌 이들보다 37.8% 높은 위험 강도에 노출돼 있었다. 위험요소와 근무시간을 0과 1 사이의 값으로 환산해 각각 취합한 결과 하도급 노동자의 물리적 위험 노출 강도는 1.164였다. 하도급이 아닌 노동자들 위험 노출 강도(0.845)에 비해 월등했다.
근골격계 위험 노출 강도 역시 제조업·비제조업을 막론하고 하도급 노동자들에게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하도급 노동자들의 근골격계 위험 노출 강도는 1.747로 하도급이 아닌 노동자들(1.434)보다 21.8% 심각했다.
하도급 노동자가 업무상 사고·질병으로 결근할 확률은 제조업의 경우 10.0%, 비제조업은 5.2%였다. 하도급 이외 노동자의 결근 확률이 제조업 3.7%, 비제조업 2.1%로 드러난 데 비해 높았다. 연구원은 “하도급 노동자들이 주관적인 위험 노출 강도, 객관적인 결근 발생확률 모두에서 더 큰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윤 위한 ‘위험의 외주화’…“원청업체 책임 강화”
노동계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외주화·도급화가 일반화되면서 ‘위험의 외주화’가 발생했다고 지적한다. 산재 발생 요인을 외부로 이전시킨 원청업체는 재해율을 낮추고, 산재보험료 감면으로 이윤까지 얻었다. 반면 더 많은 하도급 노동자들이 사고와 질병에 시달렸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산재 사망자 중 하도급 노동자 비중은 2012년 37.7%에서 지난해 6월 40.2%로 증가했다.
위험요인을 하도급으로 떠미는 과정에 윤리적 문제가 있다는 인식에는 정부도 공감하는 편이다. 대검찰청과 경찰청, 고용부는 7일 하도급 노동자 보호, 원청업체 책임 강화 등을 골자로 한 공안대책실무협의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회의에서는 구의역과 남양주 사고를 사례로 “정규직의 위험업무 회피 및 원청업체의 비용 절감을 위해 위험이 외주화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검찰은 산재 사고가 반복되는 경우에 대해 구속수사 원칙을 지켜 왔고, 앞으로도 원청업체 책임자의 형사처벌을 강화한다고 강조했다. 2012년 이후 검찰은 산재 사건에서 피고인 출석 없이 재산형만을 구하는 ‘구약식’을 줄이고, 정식 재판에 회부하는 ‘구공판’ 비중을 높이고 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사회뉴스]
☞
☞
☞
☞
[기획] 하도급 노동자 물리적 위험도 37.8% 더 높다
입력 2016-06-08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