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박원순 시장의 세번째 안전대책, 이번엔 달라야 한다

입력 2016-06-07 17:56
박원순 서울시장이 7일 구의역 스크린도어 참사에 대한 기자회견을 했다.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7월까지 지하철안전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10월에는 중장기 안전과제 혁신대책을 내놓겠다고 한다. 회견문에는 이런 문구가 들어 있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지 못한 사고였다.’ ‘지난해 강남역 사고 때 내놓은 대책은 탁상공론이었다.’ ‘위험조차도 사회적 조건에 따라 불평등했다.’ ‘특권과 관행이 불평등과 불공정을 고착화시키고 있다.’ 구의역 사고는 서울시 산하의 똑같은 공기업에서 똑같은 형태로 발생한 세 번째 참사였다. 지난 두 차례 사고 때 매번 ‘안전대책’을 꺼내들었지만 19세 청년의 억울한 죽음을 막지 못했다. 박 시장이 그 책임을 뼈저리게 통감한다면 이번 대책은 정말 달라야 한다.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언제 준비했는지 뚝딱 만들어내는 대책은 이제 못 믿겠다.

서울시는 시민과 전문가가 참여하는 진상규명위원회를 꾸리기로 했다. 김지형 전 대법관이 위원장을 맡는다. 구의역 참사는 백서(白書)가 나와야 할 사건이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들이 응축돼 있다. 매뉴얼과 현장의 괴리, 원청과 하청의 불공정 관계, 그 부담을 떠안은 청년 비정규직, 이런 부조리를 조장하는 관피아 낙하산 관행…. 두 차례 사고를 겪고도 고치지 못했다는 건 그만큼 병폐의 뿌리가 깊다는 뜻이다. 새로운 시스템을 원점에서 설계한다는 각오로 이번 사고의 문제점과 배경 요인을 샅샅이 찾아내야 할 것이다.

이번 참사의 원인을 따져 올라가면 우리 사회의 ‘갑을관계’가 나온다. 이토록 많은 사람이 내 일처럼 아파하는 것도 그 갑을관계에서 자유로운 이가 많지 않기 때문일 테다. 위험의 외주화란 무엇인가. 갑이 을에게 내 부담을 떠넘긴 행위였다. 하청업체 은성PSD는 19세 청년의 갑이었고, 서울메트로는 은성PSD의 갑이었다. 아마 서울메트로의 갑은 서울시였을 것이다. 이 불공정 관행을 뿌리 뽑자면 서울시부터 산하기관을 상대로, 관련 기업을 상대로 ‘갑질’을 하고 있는 게 없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박 시장은 하청 노동자의 삶을 옥죄는 불공정의 주범으로 특권과 관행을 꼽았다. 그것이 지하철에만 있었을까. 서울시는 11개 산하기관에서 모두 600건에 가까운 외주사업을 진행 중이다. 건물 관리부터 설비 업무까지 수많은 하청 업체가 존재하며 상당수는 시민의 안전과 직결돼 있다. 이번에 수립하는 대책은 서울시 업무 전반의 특권과 관행을 근절하는 조치여야 한다. 이는 서울시만의 문제일 수 없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규제 개혁’을 절대 선(善)으로 여기게 됐다. 경쟁력을 좀먹는 규제와 국민의 안전을 위한 규제를 구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환경과 안전에 관해선 정부 차원의 새로운 인식과 접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