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뎌지고 느려지고… 재미없는 남미축구

입력 2016-06-07 18:05
칠레 축구대표팀 공격수 알렉시스 산체스(빨강 유니폼)가 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 리바이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6 코파 아메리카 조별리그 D조 1차전에서 아르헨티나 수비수들에게 둘러싸여 공을 놓치고 있다. AP뉴시스

날이 무뎌졌다. 속도가 느려졌다. 화끈한 공격력도, 화려한 개인기도 사라졌다. 창설 100주년을 맞아 북미에서 열린 남미축구의 최고 축제 ‘코파 아메리카’에서 드러난 결과다. 강자들의 몰락, 스타플레이어의 부재…. 지금 남미축구는 후퇴하고 있다.

본선 출전 16개국은 7일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 리바이스 스타디움에서 아르헨티나가 칠레를 2대 1로 제압한 조별리그 D조 1차전을 끝으로 모두 한 경기씩 소화했다. 지금까지 8경기의 득점 기록은 모두 14개다. 경기당 1.75골씩 나온 셈이다. 그나마 멕시코(3골), 파나마(2골) 등 북중미 초청국들이 5골을 보탠 수치다.

골 잔치의 기대감을 충족하기엔 부족하다. 코파 아메리카는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북중미 골드컵,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아시안컵 등 다른 대륙별 대항전보다 화끈한 공격 축구로 늘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해 왔다. 지난해까지 99년 동안 725경기의 득점 기록은 모두 2381개. 경기당 평균 3.28골씩 터진 셈이다. 이번 대회 1차전까지 경기당 평균 득점은 과거의 절반 수준이다.

브라질 우루과이 등 전통적 강자들의 형편없는 경기력, 부상을 당했거나 일정 조율에 실패한 스타플레이어들의 부재는 대회의 질적 하락을 부추긴 요소다.

브라질은 지난 5일 조별리그 B조 1차전에서 에콰도르와 득점 없이 비겼다. 네이마르(24·바르셀로나)가 코파 아메리카 대신 2016 리우올림픽 출전을 결정하면서 무명에 가까운 공격수 루카스 리마(26·산투스)에게 에이스의 등번호 10번을 배번할 정도로 브라질의 전력 누수는 심각하다. 전술보다 개인기에 의존하는 브라질의 플레이 스타일을 감안하면 스타플레이어의 부재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코파 아메리카 최다 우승국(15회) 우루과이는 브라질보다 더 불안하다. 지난 6일 조별리그 C조 1차전에서 멕시코에 1대 3으로 완패했다. 우루과이의 간판스타 루이스 수아레스(29·바르셀로나)가 부상으로 벤치를 지킨 결과다. 브라질과 마찬가지로 선수 의존도가 높은 우루과이 축구는 슈퍼스타 한 명의 결장으로 한계를 드러냈다.

코스타리카의 브라질월드컵 8강 진출을 이끌었던 골키퍼 케일러 나바스(30·레알 마드리드)가 부상으로 출전을 포기하고, 아르헨티나의 슈퍼스타 리오넬 메시(29·바르셀로나)가 칠레와의 빅매치를 벤치에서 관전하는 등 키 플레이어의 실종으로 인한 경기력 하락은 다른 국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북중미 초청국 파나마에 1대 2로 패배한 볼리비아, 2010년 대지진 참사로 대표팀 구성조차 쉽지 않았던 아이티를 상대로 1대 0의 진땀 승을 거둔 페루도 남미축구의 후퇴를 부추기는 국가들이다.

100주년을 맞아 사상 처음으로 다른 대륙에서 개최한 이번 대회의 미숙한 운영도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6일 애리조나주 글렌데일 피닉스대 경기장에선 우루과이의 국가 제창 때 칠레 국가가 연주됐다. 우루과이 선수들은 결국 국가를 부르지 못하고 경기를 치렀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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