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사법시험을 네 번 연속 떨어지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과연 내가 최선을 다했는가. 물론 이 이상 어떻게 더 했을까 싶을 정도로 열심히 했다. 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도 그랬을까. 이 질문에 대해선 제대로 답을 할 수 없었다.
책상 앞에 써 붙인 메모지들을 한 장씩 떼어냈다. 그러자 처음 고시원에 들어와 붙였던 성경 구절이 보였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
공부에 집중한다며 조금씩 나태했던 신앙생활을 돌아보게 됐다. 다시 한 번 나를 정비하고 최선을 다해보리라 결심했다.
첫째, 하나님 보시기에 최선을 다하자. 둘째, 주변 사람들로부터 최선을 다했다는 객관적인 평가를 듣자. 셋째, 나 스스로 생각했을 때 최선을 다하자. 바로 ‘3박자 시험공부’였다.
사실 ‘3박자 시험공부’는 훗날 인터뷰하면서 한 잡지사 기자가 붙여준 것이다. 하나님 보기에, 주변사람 보기에, 나 스스로 보기에 최선을 다하자는 결심은 합격을 위한 나만의 전략이었다.
구체적으로 3박자 시험공부를 실천에 옮겼다. 시간이 많아 교회에서 봉사를 할 수 있는 것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헌금을 많이 드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으로 하나님께 최선을 다해보자고 다짐했다. 100일 새벽기도를 드리며 공부했다. 교회에서 하는 40일 새벽기도로는 부족할 것 같았다. 하나님께 너무 죄송한 게 많았기 때문이다.
4시30분에 일어나 새벽기도를 드렸다. 마치면 산에 올라가 간단하게 운동을 하고 내려와 아침식사를 했다. 그리고 책상에 앉으면 점심을 먹을 때까지 공부만 했다. 그렇게 3식을 먹을 때를 빼곤 화장실도 안 가고 공부에만 집중했다. 10년 치 사법시험 기출문제를 분석해 나만의 노트에 정리했다. 두 달 동안 그 작업을 끝내자 주변에서 “오페라(‘춘희’란 이름이 오페라 제목과 같아서 붙여진 별명)씨 대단하다”며 인정해줬다. 엉덩이에 시퍼런 멍이 들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3박자 시험공부를 했다. 그리고 5번째 도전에서 사법시험 1차에 합격했다.
2차 주관식 시험은 두 번을 칠 수 있었다. 오랫동안 했으니 공부 양도 많이 쌓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또 실패. 이듬해에 부쩍 욕심을 내 다시 3박자 시험공부에 도전했다. ‘여기서 떨어지면 1차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새벽기도를 시작한 지 40여일쯤 지났을까. 고시원 식당에 아침을 먹으러 내려갔다가 그대로 상에 쓰러지고 말았다.
희미하게 ‘춘희’를 부르는 소리에 깨어났다. 정신을 차렸을 땐 얼굴에 온통 반찬이며 밥알 투성이였다. 급속도로 몸이 쇠약해진 나는 짐을 싸들고 부모님이 계신 집으로 들어갔다. 하나님을 원망하며 얼마나 서럽게 울었는지 모른다. “고통스럽게 하지 말고 제발 나 좀 한 번 봐달라”는 절규였다. 겨우 몸조리를 끝내고 막판에 온힘을 쏟았지만 한 번 남은 기회를 날리고 말았다.
꼭 가야할 길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다시 1차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데, 잘될 거란 자신감도 없었다. 내가 결정해서 될 문제가 아니었다. “하나님께 한 번 더 매달려 보자.” 3일 금식기도를 작정하고 경기도 청평에 있는 강남금식기도원으로 향했다.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역경의 열매] 박춘희 <8> ‘3박자 시험공부’로 사시 1차에 합격했지만…
입력 2016-06-07 17: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