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e&deep] 스위스 ‘월 300만원 기본소득안’ 부결됐는데… 우리는?

입력 2016-06-07 04:02
성인에게 매월 2500스위스프랑(300만원), 아이와 청년에게도 650스위스프랑(78만원)을 조건 없이 나눠주는 스위스의 기본소득 도입안은 끝내 부결됐다. 국민투표 결과 반대가 76.9%로 찬성 23.1%를 압도했지만, 차세대 사회보장책으로 불리는 기본소득 논의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스위스 제네바의 한 투표소에서 5일(현지시간) 시민들이 투표에 앞서 신분 확인을 하고 있다. 신화뉴시스
‘국가가 매월 아무 조건 없이 성인에게는 2500스위스프랑(300만원), 어린이와 청소년에겐 650스위스프랑(78만원)을 지급한다.’

스위스 국민 누구든 최소한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보장하자며 제안된 이 ‘기본소득’ 제도는 국민투표 끝에 부결됐다. 그러나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기존의 다양하고 복잡한 선별적 복지제도가 불평등 심화를 줄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본소득을 포함한 근본적인 대안을 고민하자는 시도가 보다 확산되고 있다. 기술 진보로 절대적 일자리 수가 줄어드는 것에 대한 사회적 대비도 필요하다. 기존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가 바뀌며 대책 없는 실업이 늘어날 위기에 놓인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스위스 국민 76.9% 이상이 반대했듯 ‘누구에게나 똑같이 현금을 직접 주자’는 식의 보편적 복지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높다.

기본소득이 좌파 포퓰리즘? 세계적 논의 확산

스위스의 국민투표에 부쳐진 기본소득제의 기본 정신은 일을 하든 안 하든 모든 국민에게 약 300만원의 월 소득을 보장해 기본적인 생활은 가능하게 하자는 데 있다. 자신이 별도로 일을 해 300만원에 못 미치는 소득이 있으면 국가가 부족한 만큼 채워주고, 아예 없으면 전액을 국가에서 받는 방식이다.

언뜻 보기에 매우 급진적이고 유토피아적인 제도다. 그러나 핀란드도 지난해 정부 차원에서 기본소득 도입에 관한 연구를 시작해 내년부터 1만명을 대상으로 시범 시행을 할 예정이다.

네덜란드에서도 19개 지방정부가 기본소득 지급 방안을 검토, 내년부터 실험에 돌입한다. 신자유주의적 경제체계의 중심인 영국에서도 진보정당인 노동당에 이어 최근 왕립예술협회까지 기본소득 지급 모델을 제시하며 논의에 불을 댕겼다.

이 불씨는 유럽 대륙을 넘어 미국으로까지 번졌다. 이들 국가가 기본소득 논의에 적극적인 일차적 이유는 현재 복지체계의 한계에 있다. 일을 하는지, 재산은 없는지, 부양가족은 있는지 등을 모두 따져 사회보장 급여를 지급하는 선별적 복지체계가 결과적으로 사회 양극화 해소에 크게 기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복지 지원을 선별적으로 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인력과 비용이 지나치게 커졌다. 핀란드의 경우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대신 기존의 복지제도를 축소·일원화한다는 방침을 정해놓은 상태다. 기본소득이 오히려 ‘복지효율’을 추구하는 수단인 셈이다.

기술 진보로 일자리 부족이 심화되는 상황도 기본소득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올 초 스위스 다보스 포럼은 2020년까지 일자리 500만개가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술 진보로 돈을 버는 기업이 나와도 일자리는 부족해지는 ‘고용 없는 성장’ 시대다. 이런 상황에서 기본적인 소득을 보장해 소비를 늘리는 것이 경제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힘을 얻고 있다.

한국적 상황에 맞는 대안 고민 시작해야

국내에서도 줄어드는 일자리와 커지는 양극화를 보완할 방법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럽사회에서 제시된 기본소득과 다르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젊은이에게 수당을 주자는 청년수당도 한 예다. 사회보장제도가 취약한 한국 상황을 고려할 때 오히려 기본소득 논의가 더 시급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 4월 내놓은 ‘기본소득 도입 논의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는 산업구조에서 제조업 비중이 50%에 육박하는 대표적인 제조업 국가로 기술 진보와 자동화 등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 가능성이 큰 반면 대량 실업에 대응할 수 있는 사회보장제도는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구조적 일자리 감소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으로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시점”이라면서 “다만 GDP 대비 공공복지 예산 비율이 30%를 넘는 서구와 달리 10.4%에 불과한 한국적 차이를 인식해 사각지대 해소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기본소득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재정적자가 심각한 한국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6일 “재정부족 상황을 고려할 때 미래세대에 부담이 돼선 안 된다”며 “청년층에 국한한 보편 수당 등은 긍정적 실험일 수 있다”고 말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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