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관객 1341만명을 불러 모은 ‘베테랑’과 오리지널 감독판까지 모두 915만명을 기록한 ‘내부자들’ 그리고 오는 16일 개봉되는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장르적으로는 범죄와 액션이 어우러진 영화다. 황정민·유아인(베테랑), 이병헌·조승우(내부자들), 김명민·성동일(특별수사)의 남남 케미가 돋보인다는 점도 비슷하다. 캐릭터로는 갑질하는 금수저 재벌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특히 눈길을 끈다.
‘베테랑’의 조태오(유아인)는 안하무인 유아독존의 재벌 3세다. 자신의 사무실에서 사람을 거리낌 없이 때리고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캐릭터는 몇 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한 재벌 오너를 떠올리게 한다. 세상 무서울 것 없는 그에게는 언제나 곁을 지키는 오른팔 최 상무(유해진)가 있다. 자신은 손때를 묻히지 않고 최 상무를 통해 일을 처리하는 행태는 일이 터지면 뒤로 숨는 재벌들의 전형적인 수법과 같다.
앞뒤 가리지 않는 금수저 조태오는 기분이 나쁘면 무슨 일이든 서슴지 않고 실행에 옮긴다. 그의 대사가 그런 성격을 잘 설명한다. “맷돌 손잡이 알아요? 맷돌 손잡이를 어이라고 그래요. 맷돌에 뭘 갈려고 집어넣고 돌리려고 하는데 손잡이가 빠졌네, 이런 상황을 어이가 없다 그래요. 황당하잖아. 아무것도 아닌 손잡이 때문에 해야 할 일을 못하니까. 지금 내 기분이 그래, 어이가 없네.”
‘내부자들’의 미래자동차 오너 오 회장(김홍파)은 정치권 및 언론계와 유착 관계에 있는 인물이다. 비자금을 조성하고 권력에 빌붙어 큰소리 땅땅 치는 캐릭터다. 그러다 문제가 불거지면 휠체어를 타고 입원하는 스타일이다. TV 뉴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악덕 재벌의 모습이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신세계’ ‘암살’ 등에서 존재감을 과시한 배우 김홍파의 실감 나는 연기력이 돋보인다.
대권을 꿈꾸는 장필우(이경영)와 언론계 이강희(백윤식)의 든든한 후원자로 보이지 않는 권력을 행사하는 오 회장에게는 돈이 최고다. 검은돈이지만 개의치 않는다. “서로 구린 놈끼리 가야지 냄새를 풍겨도 개안치 않겠나. 이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게 어디 있더노. 은행돈? 임마∼그게 내 돈이다, 세상에 내 돈 안 쓰는 놈 있으면 나와 보라 케라. 이강희 니도 내 돈 땜에 글도 쓰고 밥도 묵었다 아이가.”
‘특별수사’에서는 역대급 갑질 캐릭터의 재벌 사모님이 등장한다. 대해제철 여사님(김영애)은 밖으로는 자선활동과 기부를 실천하는 덕망 높은 사모님처럼 행세하지만 안으로는 어떤 잔인한 악행도 서슴지 않는 이중적인 인물이다. 전횡을 일삼는 악덕 재벌 안방마님을 보는 듯하다. 김영애는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 같은 서늘한 표정의 여사님을 그럴듯하게 연기했다.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왜 죽고 다쳐야 하는 거지?”라는 사건 브로커 필재(김명민)의 대사에 여사님은 “아무 상관이 없다면 그게 이유가 아닐까?”라고 답한다. 그리고는 “없는 것들은 거짓말을 참 잘합니다”라며 사람을 ‘것들’이라고 지칭하는 등 안하무인 재벌가의 면모를 드러낸다. 겉과 속이 다른 못된 갑질 금수저 캐릭터다. 재벌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영화를 통해 그런 부류의 단면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실감나서 재밌다, 영화 속 ‘갑질 재벌들’
입력 2016-06-07 18: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