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쿠바 외교장관회담] 쿠바 지렛대… ‘北형제국’ 마음돌리기로 압박

입력 2016-06-06 18:23 수정 2016-06-06 21:24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5일(현지시간) 사상 첫 한·쿠바 외교장관 회담에서 ‘개인에게는 작은 발자국이지만 인류에는 큰 도약’이라는 닐 암스트롱의 명언을 인용했다.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것처럼 이날 회담이 양국 수교로 나아가는 역사적 이정표라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양국 관계가 급진전된다면 북한 외교와 남북 관계에 미칠 파급력 또한 ‘역사적’일 수 있다. 쿠바가 북한에 남은 거의 유일한 ‘사회주의 형제국’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쿠바에 공을 들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북한과 가까운 이란 우간다 등과 연쇄적으로 관계를 개선해 북한을 고립시키고 ‘생존을 위한 개방’을 선택하게 한다는 전략이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극도의 고립 국면을 겪고 있는 북한 입장에서 자신들의 ‘절친’인 쿠바와 한국의 관계 정상화는 그야말로 치명타가 된다. 북한의 반발을 염두에 둔 쿠바 측의 속도 조절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윤 장관과 브루노 로드리게스 쿠바 외교부 장관의 만남으로 우리 정부는 일단 쿠바와의 수교로 나아가는 ‘첫 물꼬’를 텄다. 우리의 수교 의사를 전달하고 관계 개선에 대한 공감대를 확인한 만큼 향후 양국의 관계 진척은 기정사실에 가깝다.

윤 장관은 회담을 마친 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 앞으로 다양한 차원에서의 후속 협의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옛날에는 조그만 길이었다면 이제는 그보다 훨씬 더 큰 길들이 여러 갈래로 나오고 있다”며 “이번 방문이 비교적 제대로 된 길이 되는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회담에 동석한 관계자는 “양자 문제와 글로벌 협력, 인사(교류) 문제를 포함한 상호 관심사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면서 “허심탄회한 분위기에서 우리 측이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했고 쿠바 측도 진지하게 경청했다”고 전했다. 양측은 회담에서 관계 정상화를 염두에 두고 다각도로 교류를 확대해 나가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진다.

윤 장관은 또 “이번 카리브국가연합(ACS) 정상회의를 통해 보여준 쿠바 측의 배려와 이례적으로 긴 양국 외교장관 간 회담을 통해 이심전심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느꼈다”며 쿠바의 반응에서 긍정적인 신호를 받았다고 전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 정부는 뚜렷한 방향성과 나름대로의 로드맵을 가지고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양국의 잠재력을 구체화할 시점’이라는 표현으로 에둘러 표현하긴 했지만 최종 목표가 공식 수교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일단 ‘길’은 열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는 게 중론이다. 쿠바와 북한의 특수관계 때문이다. 쿠바는 시리아, 마케도니아, 코소보와 더불어 북한과 단독 수교를 맺고 있는 4개국 중 하나다. 1990년대 냉전 종식 이후 한국과 쿠바 양국의 관계 개선 논의는 간헐적으로 흘러나왔지만 매번 가시적 성과는 없었다. 우리는 미국, 쿠바는 북한이라는 각자 최우방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서다.

쿠바는 이번에도 북한을 의식했는지 취재진에게 단 1분간만 회담을 공개했다. 윤 장관이 회담 이후 쿠바 측 반응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침묵한 점 역시 민감한 쿠바의 입장을 고려한 대응으로 이해된다.

북한이 고위급 인사 교류 등을 통해 동맹 단속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도 높다. 단시일 내 수교가 이뤄지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단기적인 성과에 급급해 조급하게 달려들기보다 미·쿠바 관계 정상화에 따른 시장개방 등을 염두에 두고 정치·경제 전반에 대한 신중하고 폭넓은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건희 기자, 아바나=외교부 공동취재단 moderat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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