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 ‘박쥐’(2009) 이후 7년 만에 국내에 돌아온 박찬욱(53) 감독의 파워는 여전했다. 영화 ‘아가씨’가 개봉 6일 만에 관객 200만명(영화진흥위원회·6일 발표)을 동원했다.
‘아가씨’는 여주인공 공개 오디션으로 제작 단계부터 이목을 모은 작품이다. ‘노출 수위 협의 불가능.’ 파격적인 조건에도 1500명에 달하는 지원자가 몰렸다. 놀랍게도 연기 경험이 거의 없는 초짜 신인이 낙점을 받았다. 좀처럼 떨지 않는 대담함이 무기였다.
‘박찬욱의 새 뮤즈’ 김태리(26)를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났다. “아이∼, (노출 부담은) 당연히 있었죠(웃음).” 싱그러운 미소로 입을 뗀 김태리는 “감독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시나리오까지 읽은 뒤 출연을 결정했다”며 “작품이 좋아서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 말했다.
정작 그가 고민한 건 다른 지점이었다. 김태리는 “이렇게 큰 작품에 출연하는 게 내 지나친 욕심 아닐까 싶었다”며 “이 선택이 내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 생각을 정리하는 게 먼저였다”고 했다.
“원래는 작은 역할부터 하는 게 맞는 거죠. 순서가 좀 (꼬였는데)….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요. 이것도 하나의 단계니까요.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극 중 김태리는 사기꾼 백작(하정우)의 제안을 받고 귀족 아가씨 히데코(김민희)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접근하는 하녀 숙희 역을 맡았다. 쟁쟁한 선배들 사이에서도 씩씩했다. ‘떨지 말고 부딪혀라’ ‘조급해하지 마라’ ‘네 목소리를 내라’ 등 선배들의 조언으로 힘을 냈다.
힘든 순간도 있었다. 일본 로케이션이나 지방 촬영 때는 숙소에서 외로움에 시달렸다. 티 내지 않으려 해도 내심 위축됐던 탓이다. 김태리는 “자괴감을 이겨내려고 노력했다. 계속 긍정적인 방향으로 마인드컨트롤을 했다”고 고백했다.
영화 현장이 익숙지 않은 그에게 박 감독의 세세한 디렉팅은 큰 도움이 됐다. “막힐 때 한 마디씩 툭 던져주시는데 그게 해결책이 되곤 했어요. 뉘앙스가 확 달라지고 캐릭터가 열리더라고요. 제가 생각지 못한 걸 잡아주신 거죠. 너무 신기했어요.”
영화 보는 걸 좋아했을 뿐 연기에 별 관심이 없던 김태리는 대학 시절 배우의 꿈을 꾸게 됐다. 경희대 신문방송학과 출신인 그는 재미있는 대학생활을 위해 연극부 동아리에 들어갔다. 그러다 자연스레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고, 졸업 이후 대학로 극단 이루에서 경험을 쌓았다.
“이렇게 큰 규모의 작업을 해본 건 ‘아가씨’가 처음이에요. 모든 게 다 처음이라 쉽지 않았지만 배우로서 좋은 경험을 한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신인답지 않은 솔직한 답변이 돌아왔다. “지금은 너무 큰 걸 단기간에 했는데요. 앞으로 제 중심을 잡고 천천히 밟아가아죠. 꾸준히 오랫동안 연기하는 게 제 소망입니다(웃음).” 당찬 신인배우의 앞날이 궁금해진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인터뷰] ‘아가씨’ 김태리 “아이, 노출 부담 당연히 있었죠”
입력 2016-06-07 04:30 수정 2016-06-07 08: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