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국내 처음으로 산하기관에 도입키로 한 근로자이사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4월 노동종합정책 ‘노동존중특별시 서울 2016’을 발표하면서 근로자이사제 추진 계획을 밝혔다. 근로자이사제는 근로자 대표가 기업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에 참석해 주요 사항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서울시는 근로자의 주인의식을 강화함으로써 투명한 경영, 시민 서비스 개선을 이루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즉각적인 철회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우리나라 경제체계나 현실을 도외시한 제도로 심각한 부작용과 피해가 우려된다는 주장이다.
근로자이사제는 독일 스웨덴 프랑스 등 유럽 18개국에서 시행 중이다. 서울시 발표에 따르면 이 제도가 도입되는 산하기관은 근로자 30명 이상의 공사·공단·출연기관 15곳이다. 근로자이사는 비상임이사의 3분의 1로, 근로자 300명 이상은 2명, 그 미만은 1명을 둔다. 임기는 3년이다. 무보수로 하되 회의참석수당 등 실비만 지급한다. 공개모집과 임원추천위원회 추천을 거쳐 임명한다. 노동조합원이 근로자이사가 되면 사용자 이익을 위해 행동해야 하기 때문에 노조를 탈퇴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선 처음 시행되는 제도라서 기대도 있지만 우려도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노사 간 상호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안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새로운 실험에 대한 찬반양론을 들어본다.
박정태 논설위원 jtpark@kmib.co.kr
■이래서 찬성
조성복 독일정치경제연구소 소장성공회대 외래교수
노사대립 격렬한 시기일수록 근로자 참여로 협력 끌어내야
서울시는 서울메트로 등 산하기관 이사회에 근로자를 비상임이사로 참여시키는 방안을 발표했다.
기업의 주요 사항을 노사가 함께 결정하는 이 제도는 나라별로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유럽에서 이미 많이 시행되고 있다.
독일은 이원적이사회(감독이사회·경영이사회) 구조로 근로자가 감독이사회에 참여하고 있고, 프랑스 스웨덴 등은 단일이사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주권 보호, 노사의 동등한 권리 보장, 민주주의 원리의 수호, 경제적 권력 통제 역할을 한다.
독일은 노사 공동결정제를 최초 운영한 국가로 공동결정제 사례의 모범이 되고 있다. 독일화학산업연맹(BAVC)의 베르너 베닝 회장은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는 사회적 파트너십에 대한 강조를 통해 설명될 수 있으며, 이 파트너십의 핵심 요소 중 하나가 바로 공동결정제라고 보았다. 즉 이 제도는 공동체의 사회적 안정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독일의 민주주의 문화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측에서도 공동결정제가 동기 부여, 파업 감소, 생산성 향상 등을 유도해 경쟁력 강화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2005년 사민당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공동결정제에 대한 검토를 위해 평가위원회를 구성했고, 이 위원회는 논의를 거쳐 "이 제도가 노사 간 파트너십을 구축해 지난 50년간 노사관계 안정에 기여했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2006년 기민당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이 제도에 대해 "노사가 노력해 얻은 위대한 결과물이며,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라고 평가했다.
2013년 요하임 가우크 연방대통령은 나치에 의한 독일노조 해체 80주년 기념식에서 공동결정제와 노동조합은 독일 경제 기적의 원동력이라고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1945년 이후 공동결정제의 역사는 독일 민주주의의 탁월한 사례이며, 독일은 그와 같이 산업현장에서 살아 숨 쉬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같이 독일 경제인이나 정치인들이 공동결정제를 옹호하는 것은 노사 간 파트너십이 사회적 안정에 크게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파업에 의한 노동손실 시간도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독일 통계연감에 따르면 연간 평균 파업 일수가 공동결정제법을 제정하던 1970년대 5.9일에서 1980년대 4.4일, 1990년대 1.7일로 지속적으로 줄어든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서울시 발표에 대해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근로자이사제가 우리의 시장경제 질서와 노사관계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반박성명을 냈다. 하지만 그 주장은 현상유지만을 고집하는 단견이다. 그러한 시장경제 질서가 과거 급속한 성장에는 역할을 했을지 모르나 비정규직, 소득 양극화, 빈부 격차 등 주요 현안의 해결에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협력적 노사관계가 자리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제도를 도입할 수 없다는 것도 언어도단이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라도 근로자이사를 경영에 참여시켜 노사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 성과연봉제와 공정인사제도의 도입이 공기업 개혁과 발전을 위해 그렇게 중요하고 정당한 방안이라면 근로자이사를 통해 협력을 이끌어내야 한다.
글로벌 경기침체에서 공급과잉과 경쟁력 약화 현상이 나타나면서 제조업 위기상황이 가시화되고 있다. 정부와 국회는 그에 대한 대응방안의 하나로 기업활력제고특별법(원샷법)을 마련했고, 조선업·해운업 등에서는 이미 구조조정이 일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노사 대립이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가운데 발표된 박원순 서울시장의 근로자이사제 도입 방안은 그와 같은 노사갈등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중요한 돌파구가 될 것이다. 더불어 독일처럼 사회적 약자를 위한 민주주의 발전의 한 축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래서 반대
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
한국의 노동조합 수준으로는 제도 취지 제대로 못 살릴 것
수많은 우려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산하 15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근로자이사제를 강행할 모양이다. 근로자이사제 도입을 통해 사회적 갈등 비용을 줄이고 협치 시스템을 구축해 공공부문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 바람대로만 된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경제·사회 현실, 특히 공공기관의 경영 상태와 노사관계를 고려할 때 기대처럼 제도가 운영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근로자이사제는 쉽게 말해 사업계획, 예산, 재산처분 등 주요 경영사항에 대해 근로자를 대표하는 사람이 경영진의 일원이 돼 직접 의사결정 주체로 참여하는 제도다. 유럽에서는 이미 오랜 전통을 가지고 이 제도를 시행해온 나라들도 있고, 나름의 장점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모든 법률과 제도가 그렇듯이 어떤 제도를 도입하기 전에 그 제도가 우리의 현실과 상황에 적합한지를 먼저 검토해야 한다. 다른 나라에서 잘 자라고 예쁜 꽃을 피운 나무라 해도 우리나라에 그대로 옮겨 심으면 죽거나 생태계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근로자이사제 도입 논란을 대하면서 가장 먼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공공기관의 막대한 부채 규모와 방만 경영, 도덕적 해이다. 특히 지방공기업들의 부실은 매우 심각하다. 근로자이사제 도입 대상기관인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만 해도 부채 규모가 총 4조3000억원에 이르고 자본잠식 규모도 11조원에 달한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조차 충당하지 못하는 상태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과감하고 신속한 경영상 결단과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하지만, 근로자이사제는 '과감하고 신속한 경영상 결단'과는 거리가 먼 제도다. 근로자이사제는 독일에서조차 자본시장 발전을 저해하고 기업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한다.
현재 우리의 노동조합과 노동계 수준이 근로자이사제를 본래 취지대로 운영할 수 있을 정도인가 하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3월 서울메트로 노조는 서울도시철도공사와의 통합을 무산시켰다. 수조원대 부채로 인해 경영 개선이 절박한 상황임에도 조직의 이해만을 좇았다.
뿐만 아니라 성과연봉제 도입 등 최근의 구조개혁 노력 역시 공공부문 노조들의 막강한 힘에 밀려 표류하고 있다. 노조 조직률이 높은 공공부문의 특성상 근로자이사제를 실시하면 노조 출신 인사들이 이사가 될 확률이 매우 높다. 노조는 근로자이사제를 자신들의 기득권을 더욱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이사회가 단체교섭의 제2라운드로 여겨지고 경영정상화 및 경쟁력 강화 조치들은 노조 이해에 반한다는 이유로 논의조차 어려워질 것이 분명하다.
결국 협치를 통한 기업경쟁력 제고가 아니라 조직 이기주의에 의한 공멸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근로자이사제 도입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을 예로 들면서 긍정적 효과를 부각시키려 하지만, 그들 나라와 우리는 역사적 배경, 경제·사회적 토대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오히려 우리 경제는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기본으로 주식시장 중심의 자본주의가 형성돼 있는 미국 영국 일본 등과 가까운데, 이들 국가에서는 근로자의 경영 참가를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근로자이사제가 도입되고 있지 않다. 주주가치 제고에 역행하고 지배구조 비효율성을 초래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지방공기업의 부실 문제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자 시한폭탄과도 같다. 이들 기관의 경영정상화가 시급한 상황에서 수많은 우려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칫 공공부문 개혁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근로자이사제를 밀어붙이는 것은 현재로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신제도의 도입이 아니라 기존의 잘못된 운영방식과 관행을 바로잡고 뼈를 깎는 자구책 마련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다. 공기업 부실을 계속 방치할 경우 그 모든 고통과 부담은 시민들의 몫이 된다.
[이슈 논쟁-‘근로자이사제 도입’] 근로자 참여로 협력 끌어내야 vs 제도 취지 제대로 못 살릴 것
입력 2016-06-07 2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