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쿠바가 관계 정상화의 첫걸음을 뗐다. 지난 5일(현지시간)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열린 사상 첫 양국 외교장관회담을 통해서다. 아바나에서 개최된 제7차 카리브국가연합(ACS) 정상회의 참석차 쿠바를 방문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브루노 로드리게스 쿠바 외교장관과 회담을 갖고 상호 우호 증진 방안을 논의했다.
두 사람은 2013년 9월 뉴욕에서 열린 한·라틴아메리카-카리브 국가공동체 고위급 회담 때 만난 적이 있지만 공식 회담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나라는 1995년 설립된 ACS에 98년 옵서버 국가로 가입했다. 정부는 ACS에 조태열 외교부 제2차관을 보냈으나 쿠바 측 요청으로 윤 장관을 추가 파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만큼 이번 한·쿠바 외교장관회담을 계기로 수교를 위한 디딤돌이 놓였다고 할 수 있겠다. 회담이 예정시간을 훨씬 넘겨 75분간 이어진 것이나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앞으로 다양한 레벨에서의 접촉이 이뤄지길 기대하고 다양한 후속 협의를 생각하고 있다”는 윤 장관의 회담 후 발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쿠바는 시리아, 마케도니아, 코소보와 함께 우리나라와 국교가 없는 4개국 중 하나다. 88년 서울올림픽을 보이콧했고, 최근까지 유엔의 대북 압박 조치에 반대한 북한의 ‘형제국가’이기도 하다. 북한 또한 지난달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을 파견한데 이어 이달 초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의 85번째 생일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축전을 보내는 등 쿠바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때문에 수교로 이어지기까지는 수많은 난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쿠바가 지난해 54년 만에 미국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를 정상화하는 등 최근 실리외교를 강화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한·쿠바 관계 정상화 또한 시간문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윤 장관의 쿠바 방문은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우간다, 에티오피아 정상외교의 연장선이다. 이들 나라는 오랫동안 북한과 정치·군사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온 북한의 우방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정부는 이들 나라와의 관계를 개선, 발전시킴으로써 북한의 고립을 심화시켜 핵 도발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을 깨닫게 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한·쿠바 국교 수립이 실현될 경우 북한 김정은 정권은 체제 붕괴에 비견될 정도의 어마어마한 충격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쿠바마저 등을 돌린다면 국제사회에서 더 이상 북한에 동조할 국가가 없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쿠바는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시대착오적인 낡은 이데올로기를 버리고 실리를 택했다. 이란은 핵을 포기해 중동의 맹주로 화려하게 국제무대에 복귀했다. 김정은 정권이 본받아야 할 롤모델들이다.
[사설] 김정은 고립 심화시킬 사상 첫 한·쿠바 외교장관 회담
입력 2016-06-06 1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