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속 세상] 전통시장과 서커스의 만남, ‘사람 냄새’ 몰고 오다

입력 2016-06-06 18:02 수정 2016-06-06 21:30
버블쇼 아티스트 '팀 클라운'이 초대형 비눗방울 속으로 몸을 넣는 묘기를 펼쳐 보이고 있다. 재치 있는 입담과 함께 이어지는 그의 화려한 공연에 시장 한쪽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탄성을 지르며 아낌없는 갈채를 보내고 있다. 거리 공연 예술가들이 선사하는 놀라운 볼거리에 한산함이 묻어나곤 했던 전통시장이 흥겹고 풍성한 축제의 장으로 변모했다.
40년 경력을 자랑하는 일본 스트리트 서커스의 달인 '다이스케'(본명 오치 하야토)씨가 아슬아슬한 외줄타기 묘기를 선보이고 있다.
국내 유일 요요 퍼포먼스 팀 '요요현상'의 무대.
시장 상인들이 휴대전화에 공연 모습을 담고 있다.(왼쪽) 재미있고 다채로운 공연에 어린이 관객들도 신바람이 났다.(오른쪽)
전통시장 한쪽편이 주말 정오부터 흥겹게 들썩인다. 감탄과 환호성 속에 갖가지 묘기들이 선보이고 즉석 상황극과 재치 있는 입담도 이어진다. 시장에 온 손님들은 발길을 멈추고 시장 상인들도 일손을 잠시 내려놓는다. 모두 박장대소하며 배꼽을 쥐고 박수를 치면서 즐거워한다. ‘시장에 간 서커스’ 순회공연이 시장 한편에 펼쳐낸 흥겨운 풍경이다.

서울문화재단 주최로 선보인 이번 공연은 지난 주말까지 4주간 서울시내 전통시장 4곳(은평대림시장, 중곡제일시장, 강북수유재래시장, 금천시흥현대시장)을 돌아가며 펼쳐졌다. ‘시장에서 장도 보고, 서커스도 보고’를 기치로 내건 순회공연은 침체된 재래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서커스 예술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기획됐다.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서울시가 추진 중인 다양한 정책과 사업을 문화행사로 지원하는 성격이다. 조선희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시민들께 재래시장에서의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서커스 공연 단체들에는 시민들과 소통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이번 공연의 취지를 설명했다.

공연 내용도 서울문화재단 산하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의 특색과 경험을 십분 살린 프로그램들로 채웠다. 국제거리극축제에서도 인정받는 서커스 아티스트들이 소규모 공연에 적합한 다채로운 볼거리를 선사하며 남녀노소 관객들의 활발한 공연 참여까지 유쾌하게 이끌어냈다.

거리 공연에 익숙한 공연자들은 야외 환경의 돌발 상황에도 재치 있게 대처해가며 또다른 재미를 안겼다. 공연 도중 협소한 임시 무대 뒤 좁은 골목으로 차가 지나가자 호루라기를 불며 마술을 선보이던 아티스트가 행사 스태프들을 도와 능숙하게 교통정리를 하는 모습은 관객들의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시장에서 ‘뜻밖에’ 서커스를 접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즐거운 반응을 쏟아낸다. 은평대림시장에서 청과상을 운영하는 박정권(57)씨는 “요즘 시장에서 웃을 일이 별로 없는데, 간만에 실컷 웃을 수 있었다”며 “이렇게 재미있는 공연들이 시장에서 주말마다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강북수유재래시장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홍영걸(69)씨도 “입담 좋은 약장수가 시골 장터를 들었다놨다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면서 “자고로 시장은 흥이 나게 시끌벅적해야 제맛이고 장사도 잘 된다”고 어깨를 들썩였다. 8살 딸과 함께 중곡제일시장을 찾은 이현선(42)씨는 “장 보러 왔다 우연히 보게 된 서커스 공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면서 “어린 딸이 너무 좋아해 더 즐거웠다”고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재미난 판을 벌여보니 보란 듯이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전통시장과 서커스는 실제로도 공통점이 많다. 삶의 희로애락 중에서도 즐거움과 정감이 짙게 묻어나는 대상들이지만 한동안 새로운 것들에 밀려 내리막길을 걸으며 퇴색해왔다는 점까지 닮았다. 그렇기에 사람들의 발길이 줄며 한산해진 시장 공간 한편에 사람 냄새 가득한 거리 공연이 찾아들면서 빈 공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광경은 시사하는 점이 많다. 실험적으로 기획된 이번 순회공연은 ‘시장에 간 서커스’가 동병상련을 치유할 수 있는 훌륭한 처방전이 될 수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삶의 예술이 펼쳐지는 전통시장과 그곳으로 기분 좋게 스며든 거리 예술이 고마운 이유다.

사진·글=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